▲ 지난 2월 25일 향년 84세로 영면한 고 배삼룡의 발인식이 친지의 오열 속에 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졌다. 이날 영결식에서는 후배 코미디언 엄용수가 고인의 약력을 읊고 고인과 절친했던 원로 코미디언 송해가 조사를 낭독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2월 25일 고 배삼룡(본명 배창순)의 장지 분당추모공원휴에서 기자는 문득 이 노래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게 대한민국 최고의 희극인 가운데 한 명인 ‘비실이’ 배삼룡이 세상을 떠났다. ‘인기’라는 게 실체 없는 허상이라 그런지 과거의 화려한 인기는 오간 데 없고 고인의 빈소와 장지엔 고인의 병고와 궁핍의 흔적, 유족의 아픔과 척박한 현실만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희망들은 남아 있었다.
지난 2월 25일 낮 12시를 조금 넘겨 고인의 유골을 실은 운구차량과 유가족들이 탄 버스도 도착했다. 오전 내내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하필이면 운구 행렬이 들어올 즈음 더욱 거세졌다. 고인의 첫 번째 부인 서지숙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 동진 씨와 딸 심애 씨, 그리고 두 번째 부인 홍순희 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 주영 씨, 경주 씨 등의 유족들이 봉안시설에 고인의 유해를 안치시켰다. 그런데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 있었다. 지난 20여 년가량 고인의 매니저 일을 맡았던 기 아무개 씨가 바로 그 주인공. 그는 고인의 세 번째 부인 기영숙 씨의 조카. 유족들은 기 씨가 지난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려줬다.
처조카 기 씨의 사망은 병마와 싸우던 고인의 곁을 지키던 유족들을 매우 허망하고 난감하게 만든 소식이었다. 병원비가 없어 고생하고 있던 유가족들 입장에선 혹 고인에게 남겨진 재산이 있는지 여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고인의 재산을 관리해온 기 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행여 있을지 모르는 고인의 남겨진 재산을 찾을 방법마저 묘연해졌다. 게다가 고인의 장남 동진 씨는 한 인터뷰에서 “처조카 기 씨 때문에 아버님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궁핍해졌다”고 얘기한다.
90년대 초반부터 고인의 매니저 일을 하며 모든 행사와 공연, 방송 출연료 등 모든 재산을 관리해온 기 씨는 2004년 10월 고인의 모든 재산을 빼돌린 채 중국으로 도피했다. 결국 고인은 기 씨를 사기죄 등으로 경찰에 고소했고 2007년 10월 세 번째 부인 기영숙 씨와도 이혼했다. 이혼 소송을 거치며 남은 재산의 상당 부분은 기 씨에게 갔다.
2008년 귀국한 기 씨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에 체포됐다. 그렇지만 이미 빼돌린 고인의 재산을 모두 탕진한데다 질병까지 앓고 있었다. 이혼한 세 번째 부인 기 씨가 2008년 지병으로 사망하고 2009년에는 처조카 기 씨까지 사망했다. 이렇게 80년대 초부터 병상에 눕기까지 고인과 함께했던 부인과 처조카가 모두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 기간 동안 고인은 네 자식과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고 지내왔다. 세 번째 부인 기 씨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음에도 고인이 전 부인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4남매와 거리를 두고 지낸 까닭은 세 번째 결혼을 둘러싼 잡음들 때문이었다.
고인은 육군 군예대(KAS)에서 활동하던 시절 여자 대원 서지숙 씨와 결혼했지만 이혼했고 몇 년 뒤 중매를 통해 홍순희 씨와 재혼했다. 문제는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고인이 1980년 신군부의 눈밖에 나 방송출연정지를 당해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즈음 고인이 운영하던 유산균 음료 회사도 부도가 났다.
이런 상황에서 고인이 미국으로 떠나자 가족들은 당장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 81년에는 구봉서 이대성 남성남 등 동료 코미디언들이 출연료 등을 걷어 모은 돈 50만 원을 고인의 가족들에게 생계비로 전달하기도 했다. 이즈음 연예계에는 고인의 미국 결혼설이 나돌고 있었다. 동료 코미디언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국에 부인과 자식을 두고 미국에서 결혼했다는 소문은 법적인 문제는 고사하고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나 고인은 미국에서 세 번째 부인 기영숙 씨와 결혼한 뒤 귀국했다. 이에 두 번째 부인 홍 씨는 지난 84년 “미국 체류 중이던 81년 6월 네바다주에서 몰래 가짜 합의 이혼 서류를 꾸며 이혼 판결을 받아낸 뒤 교포 기 씨와 혼인신고를 했다”며 간통 및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고인을 고소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고인은 전처들이 낳은 자식들에게서 멀어져갔다.
▲ 고인의 배다른 아들 딸인 4남매. |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 부도와 방송출연정지 조치로 빈털터리가 됐던 80년대 초 이후 고인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아는 이는 세 번째 부인 기 씨와 처조카뿐이었다.
다시 2005년으로 돌아와 고인은 처조카 기 씨가 재산을 빼돌려 중국으로 도망가는 사건을 겪으며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을 불러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세 번째 부인 기 씨가 이혼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당시에도 고인은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돈을 벌고 있었다. 그렇지만 2006년 서울 목동의 한 행사장에서 쓰러진 뒤 고인은 폐렴과 천식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졌다. 그리고 결국 2007년 6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시작한 뒤 3년여를 병상에서 지내다 결국 지난 2월 23일 새벽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병상에서 지내는 고인의 병수발을 든 것은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 주영 씨, 경주 씨였다. 큰 아들 동진 씨와 수양아들인 이정표 씨 등도 병원을 오가며 병마와 외롭게 사투를 벌이는 고인을 응원했다.
고인이 떠난 지금 유가족에게 남겨진 숙제는 2억여 원의 체납 병원비다. 삼일장이 치러지는 동안 서울아산병원 측이 다른 환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체납 병원비를 완납하지 못할 경우 사망확인서를 발급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막판에 극적 합의가 이뤄졌다. 고인의 딸 주영 씨는 “지금 있는 돈으로 최대한 성의를 보이고 앞으로 남은 체납 병원비를 갚겠다는 지불각서를 쓰는 선에서 합의됐다”면서 “정말 병원에서 많이 배려해준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라고 얘기한다.
유가족은 행여 남아 있을지 모르는 고인의 재산에 작은 희망을 걸고 있다. 유가족의 한 측근은 “고인이 병상에서 비밀리에 갖고 있던 은행계좌가 있다는 얘길 자식들에게 했다고 알고 있다”면서 “다만 고인이 이미 병으로 많이 쇠약해져 은행계좌에 대한 더 구체적인 얘기까지는 해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얘길 들려줬다.
병원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돈이 급했지만 고인이 정확한 내용을 얘기해줄 수 없어 확인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이제 고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친자들이 사망확인서 등을 제출하면 고인의 은행 계좌 및 부동산 등 재산을 조회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막내 딸 경주 씨는 “장례 절차가 끝나고 조금 안정이 되면 알아볼 계획”이라며 “체납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을 남겨주고 가셨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남겨진 재산이 없다면 우리가 평생 동안이라도 병원비를 갚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큰딸 심애 씨는 “돌아가셨으니까 한 번 알아 봐야 하겠지만 큰 기대는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의 재산을 관리해온 처조카 기 씨에게 사기를 당하고 20여 년 넘게 함께 산 세 번째 부인 기 씨와 이혼하면서 남은 재산마저 상당 부분을 넘겨 줘 사실상 고인의 유산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유족과 측근들의 관측이다. 때문에 체납 병원비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현재 유가족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다만 고인이 워낙 인기 스타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큰돈을 번 터라 비밀리에 관리해온 계좌라면 예상 외의 거액이 남겨져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럴 경우 유가족들에겐 큰 선물이 되겠지만 항간에선 자칫 배다른 네 남매 사이에 괜한 분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걱정의 소리도 있다.
그렇게 유가족들은 장지에서의 모든 절차를 끝낸 뒤 삼우제를 기약하고 떠났다. 유가족들이 다 떠나자 서서히 겨울비도 그치기 시작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