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중국 보험시장에서 10년 내리 적자를 낸 끝에 백기를 들었다. 일요신문DB
지난 10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삼성생명의 새로운 중국 합작사인 ‘중은삼성인수(中銀三星人壽)’의 출범식이 열렸다. 이날 출범식은 삼성생명의 기존 중국 합작사인 ‘중항삼성인수(中航三星人壽)’가 중국 4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중국은행을 새로운 주주로 맞아 ‘중은삼성인수(中銀三星人壽)’로 이름을 바꿔 새 출발하는 자리였다.
출범식은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과 첸스칭 중국은행 은행장, 차이찌엔짱 중국항공그룹 이사장 등 주주사 최고경영자(CEO)들과 임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성대하게 열렸다. 삼성생명은 “중국은행과 합작 체결로 방카슈랑스 최대 판매채널인 중국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며 “중국은행과의 시너지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생명보험 시장을 본격 공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은행은 2014년 총자산 2500조 원, 순이익 29조 원을 기록했다. 지점이 1만 1000개에 직원 수는 30만 명으로 총자산 기준 중국 4위다. 또 중국 5대 은행 중 유일하게 생명보험 사업에 진출하지 않고 있었으나 이번 합작사 출범을 계기로 중국 전역에서 생명보험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이렇듯 겉으로만 보면 이날 삼성생명의 새로운 합작사 출범은 중국 보험시장을 본격 공략하기 위한 공격적인 행보로 보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국내 금융권은 이날 출범식을 ‘삼성생명의 중국 철수선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10년을 버틴 끝에 결국 중국에서 백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금융권이 삼성생명의 새로운 합작사 출범을 중국시장 포기로 보는 이유는 이렇다.
삼성생명의 기존 합작사인 중항삼성인수는 삼성생명이 공동 최대주주로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회사다. 삼성생명은 지난 2005년 중항삼성인수 설립 당시 중국국제항공과 공동투자 형태로 50%씩 지분을 나눠 가졌다. 지분율로 보면 공동 최대주주지만 이는 중국당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형식상 조치였을 뿐 실제로는 삼성생명이 경영권을 행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은 자국 내 금융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계 보험사의 지분 보유 비율이 5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 설립된 중은삼성인수는 지분 비율이 확 달라졌다. 삼성생명의 지분율은 25%로 반토막이 된 반면 새로 참가한 중국은행 지분율은 51%다. 경영권이 중국은행으로 넘어간 것이다. 기존 법인과 글자 하나만 달라졌을 뿐이지만 내용면에서는 삼성의 지위가 크게 내려앉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삼성생명의 새로운 중국합작법인 설립은 사실상 중국시장에서 발을 빼기 위한 출구 전략으로 읽히고 있다.
삼성생명이 10년 만에 중국에서 발을 빼기로 한 것은 현지 진출 이후 10년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하고 돈만 ‘까먹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13년 말 기준으로 중항삼성인수의 중국 내 보험시장 점유율은 0.03%에 불과하다. 시장점유율이 워낙 낮다보니 지난해 9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10년 연속 적자를 이어왔다.
사실 중국 보험시장은 ‘외국계 보험사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곳이다. 각종 규제 등으로 외국계의 손발을 묶는 중국 당국의 보호를 업은 토종 보험사들의 텃세가 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경우 현지인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영전략이 실패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더구나 중국을 잘 아는 인물들이 구원투수로 투입됐는데도 번번이 체면을 구겼다는 점에서 그룹 상층부에서 책임론을 제기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3년 삼성전자 중국본사 사장을 지낸 그룹 내 최고 ‘중국통’으로 꼽히는 박근희 부회장을 삼성생명에 보내 반전을 꾀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결국 후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사실 중국에서뿐 아니라 삼성생명의 글로벌 경영 성적표는 국내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 1997년에 진출해 20년이 다 돼가는 태국 보험시장의 시장점유율은 0.3% 수준에 불과하다. 태국의 경우 중국과 달리 토종 보험사들이 몰락하고 외국계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땅한 변명거리도 없는 실정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역시 도쿄사무소를 대폭 축소하기로 하는 등 구조조정 수순을 밟고 있다.
삼성생명은 국내 보험시장 점유율이 30%에 육박하는 압도적 1위 기업이다. 한화생명이나 교보생명의 2위 다툼이 큰 의미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해외시장에서는 여전히 삼성이라는 브랜드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국내 금융회사들의 최대 화두 가운데 하나가 해외 진출”이라면서 “하지만 삼성조차 외국에만 나가면 맥을 못 추는 ‘안방군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