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브라운관에 옮기기 위해 골동품 상가는 물론 세계 각지를 누비며 소품을 마련했다. 큰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다이얼 전화기, 드래곤볼, 마이마이, 곤로.
이런 인기에 제작진은 즐거운 비명을 지를 법하다. 하지만 정작 제작진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88년을 고증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를 통해 과거 여행에 능한 제작진이지만 27년 전인 서울올림픽 시대를 브라운관 안에 온전히 부활시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근현대사를 다룬 드라마는 사극을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다. 사극은 이미 수없이 제작되며 다양한 세트장과 소품들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시대상에 맞게 대여해 쓰면 된다. 하지만 근현대사를 다룬 드라마는 많지 않다. 게다가 <응답하라> 시리즈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주요 소재로 삼기 때문에 고증이 필수적이다.
주인공 성덕선(혜리)의 집을 살펴봐도 지금은 쓰지 않는 물품이 수두룩하다. 밥을 지을 때는 곤로를 쓰고, 자취를 감춘 3단 냉장고와 쌀통도 보인다.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되기 전이라 집 담벼락에는 쓰레기통이 붙어 있다. 아이들이 모이는 택이(박보검 분)네 집에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포함된 일체형 TV가 있어서 이를 통해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을 본다. 월간 만화책 보물섬이 책장에 꽂혀 있고, 덕선이(혜리 분)는 당시 신세대들의 필수품인 휴대용 카세트 아하를 갖기 위해 장기자랑을 준비한다. 교묘한 칼질로 10장짜리 회수권을 11장으로 만들고, 전화번호를 찾기 위해 두툼한 전화번호부를 편다.
시청자들이 볼 때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반가운 추억의 물건들이지만 이를 빼곡히 배치해야 하는 제작진의 노고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응답하라 1988>의 소품팀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지를 누비는 것은 기본, 각종 골동품 상가를 뒤지며 1980년대를 소환할 물품들을 구입하고 있다.
1988년을 상징하는 건 단연 서울올림픽. 이 올림픽의 마스코트는 호랑이를 형상화한 호돌이였다. 때문에 <응답하라 1988>에서는 곳곳에 놓인 호돌이 인형에 눈에 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제작진은 미국에서 호돌이 인형을 공수했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열린 서울올림픽이 남다른 의미를 갖지만 미국에서는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중 하나일 뿐이다. 굳이 호돌이 인형을 간직하거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응답하라 1988>은 80년대 패션을 그대로 재현했다. 왼쪽은 호돌이.
극 중 덕선은 서울올림픽 개막식 피켓걸로 활동한다. 딸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덕선네 집은 개막식에 맞춰 TV 앞에 모여 앉았다.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성동일(성동일 분)은 아들이 사온 맥주캔을 따서 한 모금 마셨다. 이 때 맥주캔 뚜껑이 캔과 분리됐다. 지금은 뚜껑을 열어도 캔에 붙어 있도록 제작된다. 현재 한국에서는 쓰지 않는 이 캔은 중국에서 가져왔다. 아직 중국에서는 뚜껑이 분리되는 캔을 쓰는 지역이 있기 때문에 이를 가져와 1980년대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가까운 일본도 <응답하라 1988> 제작진의 든든한 우군이다. 과거 한국에서는 기술이 앞선 일제 가전제품을 많이 썼다. 전기밥솥뿐만 아니라 TV, 전축, 캠코더 등 고급 장비가 보급화 된 일본 제품이 더 쌌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를 간직하거나, 골동품을 수집하는 일본인들을 통해 여러 소품을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가격이다. 희소성 때문이다. 보존가치가 높아진 만큼 제작진도 사들일 때 웃돈을 줘야 한다.
워낙 많은 물품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제작비가 치솟는 것까지 감당하고 있다. <응답하라 1988>를 연출하는 신원호 PD는 방송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옛날 소품들이 돈이 되더라. 택시에서 쓰던 일력(日曆)은 개당 7만 원이고, 만화책 한 권을 구하려고 해도 20만 원을 줘야 한다”며 “이렇게 옛날 물건들의 가치가 높아지니 제작비가 늘고 구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은 서울 쌍문동의 한 골목. 이 골목에 사는 다섯 가족이 주인공이다. 19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골목은 의정부에 지어진 세트장이다. 나머지 촬영은 서울 근교에서 대부분 진행된다. 문제는 1980년대 분위기가 남아 있는 거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야외에서 촬영을 하려고 하면 당시에는 없던 신식 자동차들이 오가고, 각 건물에는 새 주소 표시판이 붙어 있다. 렌터카 업
체를 통해 클래식카를 구해도 번호판은 신식이다. 27년 전과 비교해 달라지지 않은 건 사람뿐이다.
눈에 보이는 소품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전해지는 당시의 시대상을 음미해보는 것도 <응답하라 1988>의 관전 포인트다. 바둑 우승 상금으로 5000만 원을 받은 택이네 아버지에게 “은행 금리가 15%밖에 안 된다”고 저축을 만류하며 “5000만 원이면 은마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조언은 지금으로 치면 로또라 할 수 있다. 오락실에 가겠다고 “100원만”이라고 말하는 대입 6수생 아들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제작진은 1997년과 1994년에 이어 왜 1988년을 택했을까? 이웃사촌의 개념이 흐려진 아파트 세대가 시작되기 전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응답하라 1988>은 2015년판 <한지붕 세가족>이라 할 만하다. 신 PD는 “2002년 같은 경우 할 얘기는 많았지만, 아파트 시대이기 때문에 따뜻한 가족 이야기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1988년도는 완벽한 아날로그 시대로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따뜻함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다”며 “정권 교체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경우도 있겠지만 <응답하라 1988>의 정체성은 가족극”이라고 강조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