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된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이 김은성 전 차장(사진)에 반격카드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 ||
반면 김 전 차장은 자신이 정치적 희생양임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권력형 비리에 연루될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권력 실세들은 자신만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김 전 차장의 주변은 상당히 옹색하고 척박해 보인다. 지난 2001년 ‘진승현 게이트’ 파문 이후 보여 온 그의 처신은 주변에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김 전 차장에 대한 평가는 한때 극명하게 엇갈렸다. ‘악역을 담당해야 할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으로서 정권의 희생양이 됐다’는 동정론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불법적 행태를 일삼은 전형적인 권력지향형 인사’라는 비판론도 있다.
하지만 국정원과 정치권 주변에서 그에 대한 평판은 후자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다. ‘호남 마피아’의 대부로 군림하면서 자신과 특정 인맥을 위해 뛰다보니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전 차장은 용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중앙정보부 공채로 들어갔다. 그의 부친은 법무차관과 대검차장을 지낸 김영천씨(2000년 작고)였다. 서울 출신인 그가 국정원 내 호남 인맥의 대부로 알려지게 된 것도 부친의 고향이 전남 장성인 까닭이었다.
김 전 차장은 대전지부장과 국회 정보위 전문위원을 지내다가 DJ의 당선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국민의 정부와 인연을 맺었다. 99년 그는 국정원 내 요직인 대공실장에 올랐고, 이어 2000년 4월 2차장에 승진하는 등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김 전 차장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DJ 정권 때 ‘진승현 게이트’가 불거지면서부터였다. 김 전 차장은 “마치 내가 진승현 게이트의 주역인 것처럼 알려지면서 권력 실세들을 대신해 사실상 혼자 많은 희생을 치렀다”는 피해의식을 주변에 토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은성은 지난 4월 SBS의 ‘DJ의 숨겨진 딸’ 보도에서도 당시 진승현 게이트가 마치 DJ의 딸을 돕기 위한 ‘특수사업’때문에 만들어진 것인 양 진술함으로써 이 내용을 알고 있는 국정원 관계자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진씨 돈 중 일부가 실제 DJ의 딸에게 건네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고작 돈 2억~3억원 구하느라고 국정원이 그렇게 국가기밀사업 운운하며 벤처기업가를 끌어들였겠는가”라고 어이없어 했다는 것.
김 전 차장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국정원과 정치권 관계자들 가운데서는 그에 대해 “결코 자기가 희생양처럼 혼자 피해를 뒤집어쓸 인물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지난 DJ 정권에서도 이른바 ‘진승현 로비 리스트’를 무기로 권력과 협상을 벌이려 했고, 뿐만 아니라 감옥에 있는 동안 권부의 치부를 드러내는 탄원서와 분당 파크뷰 아파트 특혜 분양 주장을 터뜨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장본인이었다”라며 불신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 지난 4월 ‘DJ 숨겨진 딸’ 관련 SBS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김 전 차장. | ||
실제 당시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측으로부터 ‘김 전 차장의 가석방에 대해 신경을 좀 써달라’는 요청이 여러 차례 들어왔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그는 만기출소를 두 달여 앞두고 가석방되기도 했는데, 그의 입이 신경 쓰여 국정원과 법무부가 당시 김씨의 석방을 위해 애쓴 것이 아니냐는 정치적 의혹도 무성했다.
김은성 차장-김형윤 경제단장-정성홍 경제과장으로 이어지는 국정원 내 ‘호남 마피아’의 전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상당부분 불거졌다. 전직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원래 국정원 내에서 호남 인맥의 실세는 정 전 과장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김홍일 의원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그가 김 전 차장을 등에 업고 함께 전횡을 일삼은 것이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였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현재 두 전직 원장측이 노리고 있는 ‘대반격 카드’의 핵심은 김 전 차장이 사실상 국정원 내 도청팀을 독점 지휘했다는 정황을 밝히는 데에 모아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 전 차장은 2000년 4월 초 당시 엄익준 국정원 2차장이 암 투병을 하며 직무수행이 어렵자 사실상 국정원 2차장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이후 국내 정보를 독점하게 됐다. 임동원 원장은 자신의 주 전공분야가 대북관계였기 때문에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김 차장의 조언에 많은 의지를 했다는 게 정설”이라고 밝혔다.
임 전 원장 후임으로 임명된 신 전 원장은 김 전 차장과 끊임없이 알력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갈등에 대해 당시 언론에서는 국정원 내 주류였던 김 전 차장 중심의 전남 인맥에 비주류였던 전북 인맥이 칼을 들이대기 시작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신 전 원장은 전주 출신이었다.
하지만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신 원장은 부임 초기만 해도 국정원의 내부 특성상 막강한 조직 내 파워를 자랑했던 김 차장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또한 김 차장이 신 원장의 뒷조사도 할 정도로 정보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신 원장 또한 김 차장의 힘에 은근히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김 전 차장이 물러난 것도 신 원장과의 파워 게임에서 밀려났다기보다는 게이트 후유증에 따른 정치권의 견제 때문이었다. 당초 김 전 차장은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버티며 국정원장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현직에 몸담고 있을 당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던 국정원의 수뇌부들. 이들이 퇴직 뒤 법정에서 다시 생존을 위해 공방전을 벌이게 된 것을 ‘숙명’이라 해야 할까.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