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번 인사를 통해 호텔·면세점과 패션 부문은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와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에게 확실하게 맡겼다는 평가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뉴 리더 부상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을 맡은 고동진 사장,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이끄는 고한승 사장, 삼성SDS에서 삼성전자로 옮긴 전동수 사장은 이번 인사의 꽃이다.
고동진 사장은 올 한 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 ‘삼성페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줬다. 또 삼성이 공들여 이룬 보안서비스 ‘녹스(Knox)’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모두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해외 업체와의 제휴 및 인수·합병(M&A)으로 이뤄낸 결실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들도 고 사장의 승진을 삼성의 소프트파워 강화 전략으로 해석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신종균 사장이 이끈 ‘갤럭시S6’는 하드웨어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중사양 저가 스마트폰과 애플 사이에 끼어 고전을 면치 못했다”며 “삼성페이는 처음으로 소프트웨어에서 애플을 꺾은 사례다. 부사장 1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할 만한 공로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고한승 사장도 고동진 사장과 마찬가지로 부사장 승진 1년 만에 사장이 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재용 부회장의 전략사업인 바이오부문을 이끌고 있다. 상장도 준비 중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그룹 지주사 격이자 이 부회장이 직접 지배하는 삼성물산의 자회사다. 성공적인 상장은 이 부회장에게 경영능력 입증과 후계구도 정당성 제공 등 엄청난 의미가 있다.
상장 성공의 공을 인정받은 선례는 전동수 사장이다. 전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계열사로 옮겼다가 다시 삼성전자로 돌아온 거의 유일한 케이스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삼성에서 삼성전자가 인재의 산실이지만, 일단 전자 밖으로 나갔던 임원이 다시 전자로 돌아오는 경우는 최근 들어 전무하다”며 “이 부회장이 업적이 있으면 관례에 상관없이 중용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줄 만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화에 매각한 삼성종합화학의 마지막 사장을 지냈던 정유성 사장을 삼성SDS 사령탑에 기용한 점도 주목된다. 정 사장은 20여 년간 인사부문에서만 잔뼈가 굵은 관리 전문가다.
# 더욱 공고해진 그룹 통제력
이번 인사에서 가장 큰 특징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 무게를 실어줬다는 점이다.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성열우 법무팀장, 정현호 인사팀장은 후계구도와 그룹에 대한 통제력 유지에 핵심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의결권 행사, 향후 증여·상속 등의 과정에서 법무팀의 역할은 지대할 수밖에 없다. 또 인사팀은 그룹 사정을 가장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두 부서를 맡은 책임자들에게 무게를 실어줌으로써 이 부회장의 그룹에 대한 통제력도 더욱 공고해졌다고 볼 수 있다. 미래전략실은 부회장 1명과 4명의 사장을 보유하게 돼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최고위 임원이 가장 많이 포진한 조직이 됐다.
왼쪽부터 고동진 사장, 고한승 사장, 전동수 사장
# 고명대신 예우
무선사업부장과 생활가전사업부장이라는 ‘견장’을 뗀 신종균 사장과 윤부근 사장은 일단 예전에 비해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스마트기기와 생활가전에서 모두 부진한 실적을 낸 만큼 ‘문책’을 할 수 있지만, 이건희 회장이 임명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최대한 예우를 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부문을 이끌고 있는 권오현 부회장도 언뜻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삼성종합기술원장 명패를 반납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종기원은 삼성 기술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종기원을 이끌면 삼성의 미래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정칠희 신임 종기원장은 3년간 부원장으로 사실상 조직을 이끌었고 공학이 아닌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 출신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올해 통합 삼성물산 출범 과정에서 후계구도를 위해 무리를 한 게 아니냐는 여론의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며 “이 회장이 아직도 병상에 누워있는 상황에서 마치 전권을 휘두르듯 원로급 경영진들을 교체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평가했다.
# 중공업-플랜트 합병 가능성
대규모 적자를 내며 경영 위기에 놓인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과,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을 유임한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비록 업황 탓이라고 해도 최악의 실적을 거둔 데 대해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지는 모습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유임된 까닭은 향후 두 회사의 구조조정 마무리도 이들에게 맡기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화학과 방산 부문 등을 정리한 이 부회장의 스타일로 볼 때 중공업과 엔지니어링을 떼어 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두 회사가 합병을 할 것이란 관측도 아직 적지 않다”며 “두 회사에 험로가 예상된 만큼 최측근을 보내기보다는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기존 경영진을 최대한 활용해보려는 복안으로 여겨진다”고 풀이했다. 실제 두 박 사장은 모두 삼성에서는 보기 드물게 조선부문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다.
# 여동생들 영역 분명히 해
또 다른 특징은 이부진 이서현, 이재용 부회장의 두 여동생에게 힘을 실어준 부분이다. 호텔신라에는 면세점부문에 ‘사장’을 추가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분에서는 윤주화 사장을 사회공헌위원장으로 후퇴시키면서 이서현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 이로서 호텔·면세점과 패션부문은 확실히 두 동생에게 맡긴 셈이다. 힘을 실어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확실한 영역구분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부진 사장에 이어 이서현 사장도 전문경영인이라는 멘토 없이 사업부문을 책임지도록 한 것은 결국 홀로서기에 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두 자매가 맡은 부분이 앞으로 계열분리를 하든 안 하든 이 부회장이 맡은 핵심 삼성그룹과는 확실히 별도로 움직일 것으로 봐야한다”고 진단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