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인선 감독이 밑지는 장사임을 뻔히 알고도 LG 조성원과 김영만을 맞트레이드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감독과의 궁합이 트레이드 여부를 결정지을 만큼 큰 문제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듯 스포츠 세계에선 스타급 선수들과 감독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이 ‘파워 게임’으로 확대되고 결국 선수를 사고 파는 데 주된 역할을 하는 감독이 트레이드라는 마지막 수단을 통해 힘의 우위를 과시하게 된다.
김영만은 한때 최인선 감독이 기아 사령탑을 맡을 당시 ‘감독의 아들’이란 표현을 들을 만큼 최 감독과 끈끈한 사제 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서장훈을 삼성으로 내보내고 김영만을 데려올 때만 해도 최 감독은 나름대로 큰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서장훈을 통해 알게 모르게 겪었던 심적 고통을 ‘말 잘 듣는’ 김영만을 통해 보상받고 싶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SK 유니폼을 입은 김영만은 예전의 ‘애송이’가 아니었다. 이미 스타 의식과 강한 개성이 감독의 조련을 받을 수준을 넘어섰다.
더욱이 황성인과 잦은 충돌을 빚었고 그로 인해 박건연 코치와도 의견 충돌을 빚어 김영만이란 선수 한 명이 선수단 전체의 팀워크를 해치는 요주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결정타는 지난 삼성전에서 작전타임 순간에 최 감독의 지시를 듣고 있던 김영만이 “××, 안 뛰면 되잖아”하는 입모양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혀 방송을 탔던 일이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김영만과 조성원과의 맞트레이드가 성사됐다. 최 감독과 허재는 농구계의 대표적인 견원지간이다. 기아 시절, ‘농구천재’ 허재와 파워게임을 벌이다 허재를 벤치 신세로 전락시키는 등 온갖 수모를 겪게 한 뒤 용병이 들어오면서 허재를 지금의 TG(당시 나래)로 트레이드시키는 최후의 카드를 빼들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현주엽, 서장훈과 계속된 마찰을 빚어 자신의 이력에 흠집을 내기도 했었다.
▲ 삼성 라이온스 임창용과 김응용 감독(오른쪽)은 해마다 갈등을 빚었다. | ||
프로야구에선 ‘코끼리’ 김응용 감독과 해마다 ‘맞장’을 뜨고 있는 임창용이 대표적인 케이스. 95년 고졸 신인으로 해태에 입단할 때만 해도 김 감독과 임창용은 ‘허니문’을 즐겼다. 임창용도 “어렸을 때는 감독님이 무척 이뻐해 주셨다”고 말할 만큼 김 감독은 임창용을 살뜰히 챙겼다.
문제는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결혼 생활’에 들어가면서 잦은 다툼이 벌어졌다는 사실. 특히 임창용이 ‘친정’을 떠나 삼성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나중에 김 감독이 그 둥지에 뒤늦게 안착하자 한동안 몸과 마음이 멀어진 두 사람은 이전의 관계를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삼성의 에이스로 성장한 임창용으로선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었던 것. 지난해 1월 구단과의 연봉 협상이 난관에 부딪히자 애리조나 전지훈련중에 훈련을 거부하고 홀로 귀국한 임창용에게 김 감독은 온갖 쓴소리를 퍼부은 바 있다. 그러나 임창용은 “이건 감독과의 문제가 아니라 구단과 풀어야할 일이고 내 ‘사업’이다. 연봉 계약이 안된 상태에서 어떻게 훈련하냐”며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감행했다.
특히 잘나가는 선수, 선수들이 어려워하는 선수를 잡을 경우 다른 선수들은 다 따르게 돼 있다는 감독의 논리에 임창용은 ‘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본보기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이번 트레이드 문제도 서로간의 ‘설화’가 발단이 됐지만 김 감독은 물론이고 임창용도 머리 굽히고 들어가 감독과 화해를 시도할 생각조차 없어 구단만 난처한 상황이었다.
김호 감독의 애제자로 소문난 고종수도 그동안의 ‘애정 전선’이 한랭전선을 이루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고종수가 축구 외의 일로 말썽을 일으킬 때마다 따뜻하게 감싸주고 설득시키며 ‘축구천재’로 되돌려 놓으려고 했던 김 감독이 이젠 마음을 접었다는 후문. FA선수가 된 고종수와 1차 협상에서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