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은 외교통상부에도 “‘대통령과 집권당의 역할분담이 성공한 외국 사례’를 정리해서 보고하라”는 ‘특명’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대통령이 향후 여당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돼 주목된다.
그렇다면 새해 연초로 예상되는 대통령의 ‘대국민 발표문’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가. 정가에선 벌써부터 ‘노무현식 6·29선언’이 발표될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하다. 청와대와 외교부, 정치권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전언’을 토대로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정국 구상을 미리 들여다봤다.
여권에선 노 대통령의 요즘 최대 관심사로 △신행정도시의 차질 없는 건설 △사회 양극화 극복 방안 △정계개편 구상 등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여권 인사는 “VIP(대통령)는 헌재가 행정도시 특별법 헌법소원을 각하, 사실상 합헌 결정이 남에 따라 임기 후반기에는 행정도시 건설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저소득층에 대한 예산 지원을 대폭 늘리고, 부유층에 대해선 과세를 강화하는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PEC 회담 후 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성공적인 행정도시 건설’과 ‘양극화 해결 방안’ 등을 모색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통령은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신행정도시 건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중론. 노 대통령은 오는 12월 중순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제9차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런데 외교부 소식통에 따르면 정상회의 기간 중에 노 대통령은 ‘말레이시아판 신행정도시’인 푸트라자야(Putrajaya)를 방문할 계획이다.
푸트라자야는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10여 년 동안 조성한 신행정타운으로 수도인 콸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2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말레이시아 국무총리의 집무실 등이 이전해 있다. 결국 ‘푸트라자야 방문 계획’은 충남 연기·공주지역에 건설될 행정도시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 정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 강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그런 문제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잘 풀어갈 것인가 할 때 걱정되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정치 영역”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사회 양극화와 갈등 문제를 ‘정치 영역’으로 보고 있는 까닭에 ‘정치 영역 개편’ 즉 ‘정계 개편’이 뒤따라야만 ‘양극화 갈등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게 대통령의 의중인 듯싶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대통령이 청와대 핵심 참모들에게 지시한 내용 가운데는 향후 정치 구도에 대한 구상도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청와대가 ‘현재까진’ 대통령의 탈당이나 거국내각 구성 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구상이 완전 폐기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APEC 회담 이후 노 대통령은 외교부에 ‘세계적으로 대통령과 집권 여당 간에 역할을 분담해서 성공했던 사례들’을 취합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여당필패론’을 막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당·정·청 간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현재의 여야 정치 구도를 깬 후 새로운 판짜기에 나서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연초에 향후 정국 구상을 발표하면서 정계 구도 개편과 관련해서도 언급할 공산이 크다”면서 “아무래도 현 시점에선 개각을 통해 거국 내각을 구성할 가능성이 클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미국에서 유학중인 추미애 전 의원의 통일부 장관 입각설이 나돌면서 힘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예정보다 빨리 귀국할 것으로 알려진 추 전 의원의 한 측근은 “내년으로 예정됐던 귀국 시기가 빠르면 올해 안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면서 조기귀국 이유에 대해선 “아이들의 교육 문제 때문”이라며 정치적인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대통령이 연초에 향후 국정 운영 구상을 발표하면서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언론에서 언급되고 있는 개각 폭보다 더 큰 폭으로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대폭적인 개각이 이뤄진다면 민주당이나 민노당 등 야당 인사들이 ‘노무현호’에 승선할 공산도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다시 말해 정당을 초월한 거국 내각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연정’ 구상이 현실화된다는 얘기다.
청와대도 ‘대연정’은 폐기했지만, ‘소연정’에 대한 미련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가졌던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과 국민중심당(가칭)을 주도하는 심대평 충남지사가 만나 ‘소연정’에 대해 모색하는 ‘밀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대통령으로부터 임기 후반기 구상과 관련해 ‘숙제’를 받았던 청와대 참모 가운데는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을 차단할 수 있는 대책을 모색하고 있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26 재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후 여당 일각에선 ‘청와대 책임론’을 제기하며 “대통령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등 대통령을 향한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청와대 참모로서 대통령에게 대드는 듯한 이 같은 모습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치할 수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5년 12월,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노 대통령과 청와대 측근 참모들은 2006년 새해 벽두 국민 앞에 내놓을 향후 국정운영과 관련된 ‘보따리’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