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토종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이끄는 김병주 회장(53)은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의 넷째 사위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씨티그룹과 골드만 삭스 등 세계적인 금융사에서 근무한 금융전문가다. 이후 솔로몬과 칼라일 등 글로벌 사모펀드를 거치며 투자전문가로 성장했다. 지난 2000년 칼라일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한 것도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5년 자신의 영문이름인 ‘마이클 병주 김(Michael Byungju Kim)’에서 따온 MBK파트너스를 설립하면서다. 당시 그는 하버드 동문과 칼라일그룹 동료 등을 규합해 아시아 지역 펀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15억 달러짜리 ‘MBK 1호 펀드’를 만들면서 사모펀드 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설립 이듬해 HK저축은행에 투자하며 국내 투자에 첫발을 내디딘 김병주 회장은 2008년 국내 최대 케이블TV업체인 씨앤앰(C&M)을 인수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아웃도어업체 네파, 정수기업체 코웨이 등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글로벌 보험사인 ING생명 한국법인을 1조 8400억 원에 인수, M&A 시장 최대 큰손으로 떠올랐다.
김 회장은 특히 한미캐피탈을 1억 7000만 달러에 인수해 6억 6000만 달러에 매각했고, 금호렌탈을 2억 3670만 달러에 인수해 4억 1800만 달러에 되파는 등 귀재다운 모습을 보였다. 현재 MBK는 8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운용하며 일본과 중국 등을 포함해 총 23개 기업을 거느린 다국적 사모펀드로 성장해 있다.
이처럼 잘나가던 김병주 회장이 최근 위기론에 봉착한 이유는 최근 인수한 기업들의 매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기본적으로 기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이익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도 하는데, MBK 역시 대형 매물들을 인수하기 위해 은행 돈을 끌어다 썼다. 따라서 기업 매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자 부담이 커지고, 대출 만기가 되면 원금까지 갚아야 하는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MBK는 인수한 기업들 중 씨앤앰, HK저축은행, 코웨이 등을 차례로 매물로 내놨지만 모두 난관에 봉착해 있다.
HK저축은행은 가격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MBK파트너스가 2006년 HK저축은행에 투자한 금액은 2500억 원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HK저축은행 인수후보인 미국계 사모펀드 JC플라워는 2000억 원에 못 미치는 인수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대로 매각할 경우 손해 보는 장사를 해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 7월 JC플라워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지 5개월여가 지났지만 협상은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정수기업계 1위인 코웨이 매각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MBK는 코웨이 지분 30.9%를 매각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가격 문제로 인수후보였던 국내외 업체들이 모두 이탈하면서 표류하고 있다. 코웨이 매각에는 당초 김병주 회장이 몸담았던 미국계 사모펀드 칼라일, 중국 가전회사 하이얼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CJ그룹 등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칼라일의 경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작스레 실사 작업을 중단하며 먼저 발을 뺐다. 이어 CJ그룹은 하이얼과 컨소시엄이 깨지면서 지난 11월 30일 실시된 본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특히 CJ의 경우 김 회장 측이 본입찰 마감 시한까지 연장해가며 참여를 독려했지만 끝내 외면했다. CJ는 코웨이 인수가로 2조 원대 초반을 제시했지만 MBK파트너스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 2조 5000억 원 이상을 고집하면서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적인 부담이 되고 있는 매물은 한때 국내 케이블방송 업계를 호령하던 씨앤앰이다. 씨앤앰은 올해 초부터 매물로 나와 있지만 한 해가 다 가도록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씨앤앰 지분 93.81%를 보유한 MBK는 매각가로 2조 5000억 원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케이블방송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그 정도 값을 치르고 씨앤앰을 인수하려는 기업이 없는 상태다.
한때 씨앤앰 인수 계약 직전까지 갔던 SK텔레콤이 막판에 CJ헬로비전 인수로 방향을 선회한 것도 가격 문제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분 30%를 5000억 원에 인수하고, 나머지 지분 23.9%는 오는 2019년 4월부터 2011년 4월쯤 사이 풋·콜옵션 행사를 통해 인수하는 등 총 9000억 원에 CJ헬로비전을 인수했다.
씨앤앰 매각이 틀어지면서 MBK 측이 막대한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할 처지가 됐다. MBK는 지난 2008년 호주계 맥쿼리 사모펀드와 함께 국민유선방송투자(KCI)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씨앤앰을 2조 2000억 원에 인수했다. MBK는 당시 신한은행 등 금융기관들로부터 2조 원을 빌렸고,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2000억 원의 한도대출을 별도로 설정했다. KCI가 채권단에 연간 지불해야 하는 이자만 1500억 원에 이른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 한도대출이 내년 1월이면 고갈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장 2월부터는 자기자금으로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인 것. 더 큰 문제는 내년 7월에는 원금 2조 원의 만기도 돌아온다는 점이다. MBK가 운용 중인 자금이 8조 원에 이른다고는 해도 이는 인수기업의 지분가치 등이 포함된 것이기에 2조 원에 달하는 자금상환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대출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설정하는 한도대출은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한도가 바닥났다는 것은 일시적으로라도 현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일 수 있다”면서 “만기연장이나 대환대출 등 다른 방법이 있다면 모를까 2조 원에 달하는 원금 상환은 상당한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