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자동차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등 부친 이건희 회장과 닮은 경영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플랜트 기공식(왼쪽)과 삼성전자 반도체 16라인 기공식. 이 회장은 그룹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반도체 사업을 육성했고, 이 부회장은 바이오 부문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일요신문 DB
# 사재출연 1999 vs 2015
지난 1999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 400만 주를 삼성자동차 채권단과 협력업체(50만 주)에 내놓는다. 당시 삼성이 계산했던 주식가치는 주당 70만 원씩 총 2조 8000억 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26%였던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율은 5% 미만까지 떨어진다. 물론 이후 차명주식 415만 주가 실명전환되면서 지분율은 20%를 넘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만 해도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던 삼성생명 주식을 내놓을 정도로 ‘결단’을 내린 셈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8일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에 최대 3000억 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존 주주들은 물론이고 그룹의 다른 계열사들도 주주들의 반발 가능성 때문에 선뜻 지원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결단이다. 여러 논란을 피하려면 이 부회장이 나서는 게 모양새가 가장 좋았을 터. 그럼에도 향후 상속과 증여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엄청난 액수다.
이 부회장이 나섬으로써 총 1조 2000억 원의 증자에 삼성 특수관계인이 부담하는 금액은 기존 주주와 우리사주조합 등을 합해 최대 7000억 원이 넘게 된다. 절반 이상의 책임을 지는 셈이다. 덕분에 1조 2000억 원에 달하는 삼성엔지니어링의 유상증자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부회장이 갖게 될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은 향후 그룹 지배구조가 삼성물산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지배력 강화에 쓰일 수도 있다. 삼성물산이 계열사들을 자회사 형태로 재편해 기존 주주들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삼성물산에 현물출자하고 대신 삼성물산 주식을 받는 방식도 가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최근 삼성은 미래전략실의 핵심 임원 두 사람을 삼성물산으로 보냈고, 사업부문도 리조트, 패션, 건설, 상사 등으로 정리했다. 향후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해석이 있다.
# 자동차 1987 vs 2015
지난 9일 삼성전자는 조직개편에서서 ‘전장사업부’를 신설했다. 전장이란 자동차의 전자장치를 말한다.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IT 회사들이 미래형 자동차산업에 적극적인 상황에서 비록 부품이지만 자동차 사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많다. 이 부회장은 최근 수년간 글로벌 자동차업체 최고경영진들과 교류하며 전기자동차 등 미래 자동차 산업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1987년 12월 취임한 지 채 한 달도 안 돼 이건희 회장은 자동차사업 진출 준비 지시를 내린다. 결국 삼성자동차는 실패했지만 ‘자동차가 미래에는 전자제품처럼 될 것’이라는 이 회장의 예언은 최근에서야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전장사업팀은 권오현 부회장 직속으로 편제되지만 실제 지휘는 박종환 부사장이 맡는다. 박 부사장은 이건희 회장이 1995년 설립한 삼성자동차에 파견됐던 인사다.
이 부회장의 자동차 사업에 대한 의지는 앞서 삼성SDI에서도 확인됐다. 전기차 배터리를 담당하고 있는 삼성SDI도 자동차용 배터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최근 배터리소재센터를 신설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도전하는 자동차 사업도 비록 형태는 이 회장과 같은 내연기관 완성차는 아니지만, 미래 자동차가 전자제품화될 것이란 차원에서의 접근”이라면서 “역시 부친에게서 경영수업을 받은 만큼 많은 부분 공유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 반도체 vs 바이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와 휴대폰 등을 육성, 그룹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마련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바이오 부문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삼성 바이오사업의 성패는 통합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과도 직결된다. 이르면 내년부터 매출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미 나스닥 상장 방침을 정한 삼성바이오에피스에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나스닥 또는 코스닥 상장을 저울질 중이다. 두 회사의 상장이 성공하면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크게 높아져 향후 후계구도를 위한 재원마련에 결정적 역할을 할 전망이다. 아울러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도 입증되면서 더욱 탄탄한 후계구도 마련이 가능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앞서 셀트리온이나 한미약품 사례에서 보듯이 바이오는 한번 터지면 대박이 나는 분야”라면서 “삼성이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해온 사업인 만큼 성공한다면 스마트폰의 부진을 씻을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