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 고건 당시 국무총리가 청와대 국무회의에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화 앞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먼저 고 전 총리는 지난 1998년 서울 민선시장 선거를 통해 인맥관리의 노하우를 직접 몸에 익힌 바 있다. 그는 당시 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의 압도적인 지원을 받으며 각계각층의 여론선도층 8천 명에 대해 체계적인 인맥관리를 한 바 있다. 그 뒤로도 고 전 총리의 측근들은 이 ‘조직’의 핵심 멤버들을 관리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 전 총리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정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강홍빈 서울시립대 교수가 지금까지 당시 ‘인맥’을 관리해오고 있다는 것. 이들은 고 전 총리의 ‘콜’에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가 돼 있는 상태라고 한다.
고 전 총리의 또 다른 최측근으론 강운태 전 농림부 장관이 있다. 그는 고 전 총리의 서울대 후배로서 내무부에서 오랫동안 손발을 맞추어온 사이다. 일부에서 강 전 장관이 고 전 총리의 또 다른 ‘복심’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다. 강 전 장관의 행보를 보면 고 전 총리의 ‘이면행보’를 볼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 강 전 장관이 올해 2월 ‘파푸스(PAFUS) 포럼’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이 단체가 고 전 총리의 또 다른 외곽 지원 조직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단체는 강 전 장관이 지난해 총선에서 실패한 뒤 주로 영남지역의 대학을 돌며 특강을 하다가 대학생 등 젊은이들로 만든 봉사단체다. 지금도 매월 한 번씩 수도권 일대에서 산행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10월 청계산에 올랐다가 강 전 장관이 ‘건봉’이라는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과 함께 산행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건봉은 아마 고건의 ‘건’과 봉우리 ‘봉’자를 써서 만든 것 같다. 활동이 꽤 활발한 것 같았다”고 전했다. 파푸스 포럼 관계자는 “‘건봉’은 포럼 소속 일부 회원들이 만든 소모임이다. 뜻도 고 전 총리와 관련된 게 맞다”고 밝혔다.
고령인 고 전 총리는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학교 특강도 자주 다니는데 대학생 등 젊은이들의 모임인 ‘파푸스 포럼’도 고 전 총리의 전략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강 전 장관은 이 모임에 대해 “회원 중에는 정치인도 있을 수 있고 민주당도 있고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도 있다. 특정 정치집단 쪽으로 귀속되는 그런 성격의 단체는 추호도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하는 걱정에서 만들어진 단체일 뿐이다”라고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고 전 총리가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그의 외곽 지원조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모임도 있다. <일요신문>이 최근 보도한 바 있는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한미준)이라는 단체가 그것.
이 모임은 최근 여의도에 새로운 사무실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비영리 법인으로 설립해 내년 1월20일 창립대회를 가질 계획. 강영훈 전 총리가 특별강연을 할 예정이며 이홍구 전 총리 등 고 전 총리의 지인들도 참석할 것이라고 한다. 고 전 총리도 참석을 고려하고 있다는 후문.
이 단체는 고 전 총리가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가 측근들을 보내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만큼 단체 내에 ‘친 고건’ 기류가 흐르고 있다. 한미준은 각계 전문가 1천여명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향후 고 전 총리가 결심을 하고 ‘고’를 외칠 경우 언제라도 즉시 대권 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잠재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대중 조직으로는 회원이 4천여 명에 이르는 팬클럽 ‘고사모 우민회’가 있다. 이 조직은 ‘순수 고건 팬클럽으로 남자’는 의견과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적극적인 정치세력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는 여기에서 이탈해 본격적인 정치세력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고 전 총리는 ‘사람 관리’를 잘 하는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36년 동안이나 공직생활을 해왔다. 내무부(행정자치부의 전신) 공무원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민주당 최인기 의원은 “고 전 총리는 한번 알게 된 사람은 소홀히 하거나 내치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한번 맺은 인연은 10년이든 20년이든 챙긴다. 계보라기보다는 친목모임의 성격이다. 이게 고건 인맥의 특징이다. 한 측근은 “고 전 총리는 모임은 소중히 여기지만 참석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오랫동안 모임이 유지되는 비결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같은 모임 가운데서도 고 전 총리의 오랜 지인들로 구성된 ‘동숭포럼’은 자문 기능을 한다. 자택 부근인 동숭동의 한 찻집에서 매일 오전 만나 의견을 나눈다. 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 정경균 서울대 명예교수, 김재순 전 국회의장, 한종훈 아프리카 미술박물관장 등 멤버가 7~8명에 이른다. 이들 개개인이 각계에 형성한 두터운 인맥도 잠재적인 ‘고건 팬’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게 정가의 시각이다.
고 전 총리는 내무부 공무원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초당회’ ‘보름회’ ‘기린회’ ‘목우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초당회의 경우 고 전 총리가 전남지사(1975~79년)를 하면서 알게 된 전남 출신 인사들의 모임이다.
정치권에서는 경기고(52회) 후배들로 구성된 화목회가 일종의 ‘고건을 생각하는 모임’ 성격을 띠고 있다. 고 전 총리는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 정치인들의 모임도 꾸리고 있다. 국회에선 열린우리당 이호웅 김부겸 신중식 의원,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 등이 멤버.
고시 13회(61년 시험) 동기 모임은 90년대 초 시작한 이래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매달 13일 계속되고 있다. 박희태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 이효계 숭실대 총장, 김영진 전 한나라당 의원, 박수길·선준영 전 유엔대사, 노건일 전 교통부 장관 등 회원들이 매달 돌아가며 밥을 산다.
고 전 총리가 몸담고 있는 모임은 일일이 소개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다. 고 전 총리가 과연 이런 ‘모래알’ 조직을 얼마나 튼튼한 대권 조직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그의 ‘결심’도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