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에 안면 보호대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얼마전에도 심정수 선수가 롯데의 박지철 선수한테 왼쪽 얼굴을 맞아 스물다섯 바늘이나 꿰맸다. 심정수는 지난해에도 롯데 투수의 공에 똑같은 부위를 맞아 수술한 적이 있다. 그가 수술을 받고 나서 제일 처음 한 말이 “앞으로 몸에 맞은 공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지체없이 마운드로 달려나가 그 투수를 ‘응징’하겠다”였다.
‘당연한’ 말이다. 사실 투수가 타격을 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타자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투수가 공을 던지다 보면 몸에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벤치에서 한방 먹이라는 사인이 나온다든지 선수 스스로 표가 날 정도일 때는 선배고 후배고 간에 마운드로 달려가 ‘맞장’을 뜨고 싶다.
투수가 갑자기 다리를 높이 쳐들고 빠른 직구를 던져 맞힐 경우는 100% 빈볼이다. 또 포수와 사인 교환없이 곧바로 와인드업해서 투구한 공이 몸쪽으로 날아올 때도 거의 빈볼이다. 그리고 그날 경기 확실하게 진 것 같은 팀 투수가 홈런이나 결승 타점을 올린 상대팀 타자가 타석에 나왔을 때 자꾸 벤치를 쳐다보면서 포수 사인도 보지 않고 와인드업해서 한방 먹일 때는 정말 싸가지 없는 빈볼이다.
미국의 유명 야구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투수는 가족 부양하려거든 타자의 몸쪽을 향해 공을 던져야만 10승 이상 한다는 말이다. 그말은 맞다. 하지만 타자를 맞히라는 얘기가 아니다.
예전에 어느 감독은 상대 타자 중에 눈에 거슬리는 선수가 있으면 투수한테 ‘보내라’는 사인을 주곤 했다. 한 번은 감독한테 사인을 받은 K선수가 차마 친한 선수에게 ‘장난’을 칠 수가 없어 등뒤로 던지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불같이 화내며 K를 2군으로 보내 버렸다.
필자의 LG 시절, 선동열 선배가 2년이 넘도록 44게임 무패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잠실 경기에서 필자가 동점타와 역전타를 치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패전 투수로 전락했다. 다음날 모든 스포츠신문 1면에는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추락’이라고 시뻘겋게 나왔다. 그날 결국 마지막 타석에 섰을 때 빠르게 돌진하는 몸쪽 공을 보며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오금이 저릴 정도의 공포감은 지금도 잊지 못할 쓰라린 추억거리다. SBS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