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15일 에인트호벤 홈 데뷔전에서 드리블 하고 있는 이영표. [대한매일] | ||
얼마 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으로 ‘임대’란 꼬리표를 떼고 완전 이적(3년 계약에 이적료 1백70만달러(약 20억원)), 연봉 74만달러(약 9억원)의 꿈을 이룬 이영표(26)는 독실한 크리스천답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영험한 ‘기도’로 인해 불가능했던 일들이 현실화됐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네덜란드의 한국인 ‘용병’ 이영표. 드러나지 않는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에인트호벤 서포터스로부터 아낌없는 칭찬과 응원을 받는 이영표의 네덜란드 성공시대 ‘제1장’을 들춰본다.
이영표는 임대에서 이적으로 ‘신분 상승’을 이뤘음에도 실제론 커다란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물론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덜긴 했지만 여전히 시작일 뿐이고 약간의 변화라면 하나의 고갯마루 정도를 넘은 듯한 기분이란다.
“내 실력에 의해 이 자리까지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자꾸 종교 얘기를 하면 거슬려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정말 하나님의 도움 때문에 여기 설 수 있었어요. 내 실력은 내가 가장 잘 알잖아요.”
그는 처음 에인트호벤에서 생활할 때 동양인이라는 사실에다 특히 98프랑스월드컵 본선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0-5 참패를 당했던 한국 선수라는 타이틀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작용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오기가 생겼고 도전해보고 싶은 의욕이 샘솟았다. 다행히 출전 기회가 계속 주어졌고 히딩크 감독의 의도대로 큰 실수 없이 맡겨진 역할을 소화해냈다. 외국 생활에서 인정받으려면 실력 있는 선수가 돼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가 네덜란드에서도 어김없이 통했다.
“나 역시 네덜란드어에 익숙하지 않아 고생이 많죠. 열심히 배우려고는 하지만 생각처럼 잘 안돼요. 그나마 더듬거리는 영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죠. (박)지성이랑 같은 팀에 있는 게 큰 힘이 돼요. 스트레스가 쌓일 때 한국말로 수다 떠는 게 유일한 낙이니까요.”
▲ 박지성과 함께. | ||
이영표가 유럽 축구 문화 중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이 선수들이 연습할 때나 경기할 때나 전혀 봐주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연습도 실전처럼 격렬하기 때문에 가끔 선수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한 사람이 실수하면 다가가서 등 두들기며 ‘괜찮아’ 하잖아요. 이쪽 애들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실수하면 난리가 나요. ‘너 왜 그러냐, 지금 졸고 있냐, 정신 차려라’ 등의 이야기로 면박을 주기 일쑤죠. 처음엔 그 분위기에 적응이 안돼 무척 힘들었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약간의 틈만 보여도 ‘wake up!’ 해대는데 정말 정신 없었죠.”
하루는 경기가 끝난 뒤 라커룸 문을 여는 순간 축구화가 날아다니는 장면을 목격했단다. 선수들이 라커룸 양쪽 끝에서 서로 축구화를 던지며 경기중 실수했던 부분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장면이었지만 이영표한테는 그때의 ‘축구화 공방’이 각오를 새롭게 다질 수밖에 없는 ‘충격 영상’이었다.
모범적인 신앙인이라서 그런지 그의 생활 자체가 ‘수도자’나 다름없다. 술과 담배는 입에 댄 적도 없고 나이트클럽은 근처에도 안가봤다고 한다. 이성과의 만남은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가 처음이자 마지막(결혼할 예정이기 때문)이라는 걸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
대표팀 생활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왕따’를 당할 때가 있었지만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한다. ‘왕따’의 배경엔 이영표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하나님’이 존재한다. 이영표 입에서 ‘하나님’ 소리만 나오면 선후배들이 ‘또 그 얘기냐’ ‘웬만큼만 해라’ ‘분위기 깨지 마라’ 등등의 비난들을 쏟아내며 구박(?)했던 것. 그래도 이영표는 아무리 돌아보지 않으려 해도 예전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늘 강물처럼 마음 속을 흘러 다닌다고 말한다.
‘취중토크’를 할 수 없는 유일한 선수라는 기자의 말에 ‘신앙토크’는 잘할 자신 있다고 대답하는 이영표의 네덜란드 성공시대 제1장이 화려한 조명 속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