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숭실대 김도연과 올해 3월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숙소 화재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선수들과 그 유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역지사지’라곤 하지만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가는 허탈함 탓에 남은 삶을 감내할 용기마저 잃었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그때 그사건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간 2003년 7월 현재 ‘축구 유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고 김도연(숭실대) 선수 | ||
김도연의 아버지 김정국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 첫마디부터 “해도 너무 한다”며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김씨는 지난해 5월 변호사를 선임한 후 속초시와 대학축구연맹을 상대로 8억원을 배상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후 1년여 만인 지난 6월10일 법원으로부터 ‘1억8천만원 보상’이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속초시가 ‘배상액이 너무 크다’며 지난 6월 말 항소장을 접수하자 허탈감에 빠진 상태. 김씨는 “항소가 받아들여지면 1년 이상 또 다시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한다”며 “배상을 받는다 해도 변호사 수임료, 인세 등을 한꺼번에 지불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씨는 “택시 운전대를 놓은 채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뛰었는데…”라며 씁쓸해 했다.
김씨는 도연이의 뒤를 이어 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둘째 아들이 걱정이라고 한다. 김씨는 “부평고 1학년인 도훈이가 나중에 대학에 진학해서 제대로 축구선수로 활약할 수 있을지 내심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17일 김씨 가족들은 교회에서 추모 예배를 한 뒤 백석 공동묘지로 향했다고 한다. 김도연은 영결식에서 화장돼 이곳 친할머니 산소에 한 줌의 재로 뿌려졌다.
김씨는 “산소 앞에 도연이의 재가 아직 남아 있는 걸 보고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 자리를 떠나지 못했겠는가”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김씨는 집 안팎에서 도훈이 얘기를 삼가는 대신 큰아들의 유니폼과 옷을 입고 다니면서 생전의 체취를 느낀다고 한다.
지난 3월26일 9명의 축구 유망주들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화재 참사의 후유증도 예상외로 크다. 그동안 사망자 유가족들은 천안교육청과 위로금 지급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느라 생업을 포기한 상태며 특히 7월15일 사고의 책임자로 기소됐던 교장, 감독, 시 관계자 등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해 신경이 더욱 예민해진 상황이다.
유가족 대표인 김창호씨(김바울 아버지)는 “우리 편은 눈을 씻고 둘러봐도 없다. 가해자(천안교육청)가 돈을 받았는데도 책임을 면하는 게 말이 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유가족들은 바깥출입을 삼간다고 한다. 주위 이웃들이 보상금을 받고도 난리를 친다며 손가락질을 하기 때문이다. 김창호씨는 “술집도 제대로 드나들지 못한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억대 보상금을 받았으니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고 비아냥거린다”고 토로했다.
사망자 9명 중 5명이 독자. 대(代)가 끊겼다는 사실 역시 부모들에겐 뼈아픈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김창호씨에 따르면 사고 직후 두 가정의 어머니가 새로 아이를 가졌으나 결국 다 유산했다고 한다.
15명의 부상 선수들과 가족들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흡입 화상으로 인해 몸부림치고 있고 지켜보는 부모들도 가슴이 찢어진다. 보상금 액수도 사망자에 비해 극히 적어 혹시나 상처나 부상 부위가 악화돼 재수술을 해야 하면 꼼짝없이 경제적인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엄지와 새끼를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을 절단한 윤장호 선수의 가족은 초상집 분위기다. 얼굴과 이마에 두 차례 이식 수술을 하고 왼쪽 손가락과 팔이 안쪽으로 구부러지기까지 하자 ‘장호’ 본인의 절망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아버지 윤씨는 “붕대로 발가락을 감고 있을 때는 ‘아빠 나 축구할 수 있지’라고 자주 물었는데 지금은 말이 없다. 충격으로 식사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다. 어떻게든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줘야 하는데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재영 월간축구 베스트일레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