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협력업체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억대 금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는 민영진 전 사장. 금품선거 의혹을 받고 있는 조남풍 재향군인회장. 일요신문 DB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T&G 수사를 지켜본 한 검사의 말이다. 그는 1조 원이 넘는 매출 규모를 자랑하는 KT&G의 의사결정 구조를 문제 삼았다.
“2013~2014년 경찰의 KT&G의 수사 결과부터 짚어볼까요? 그 과정이 모두 상식 밖입니다. 회사 소유 부동산 매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공무원에게 로비하자는 의견을 임원진이 올리고, 전달하는 돈을 회사 차원에서 조달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로비도 문제지만 회사 돈으로 할 생각을 한다니요.”
KT&G는 ‘쌍팔년도’에나 할 법한 일을 2010년에도 자행했다. 전매청 시절부터 함께한, 오랜 동료들에 대한 우정은 끈끈함을 넘어 ‘끈적한’ 수준이었다. 청주시 공무원에 대한 비리 행위로 사법처리를 받고 돌아온 임원들을 회사로 복귀시켰을 때의 비판을 감안해 협력업체에 꽂아줬다. 협력업체는 거부할 수 없었다. 앞서의 검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협력업체들은 정말 ‘을 중에 을’입니다. 그러면서 KT&G와 한 가족 같은 개념이죠. 협력업체들이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인건비는 얼마를 쓸지, 얼마나 마진을 남길지, 공급과 이익 규모부터 월급까지, 모든 것을 KT&G가 결정합니다. 그렇다고 착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협력업체로 지정되면 먹고 살아갈 건 확실히 챙겨줍니다. 그러다보니 철저하게 KT&G에 매달리고 로비를 할 수밖에 없는 게 협력업체 입장이죠. KT&G가 내보내는 임원을 마지막으로 챙겨주는 곳도 당연히 협력업체입니다.”
민영진 전 사장은 대내외 논란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로비로 막으려 했다. 국세청의 조사를 막기 위해 브로커에게 직접 돈을 건네기까지 했다. 브로커에게 돈을 준 사람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법 조항이 없기 때문에 민 전 사장의 이번 혐의에서는 빠졌지만, “대기업 사장이 구린 게 얼마나 많았으면 브로커를 수소문해 돈을 건넸겠느냐”는 게 검찰의 지적이다.
회사에 대한 인식이 그러한 만큼 경영도 비정상적이었다. 사장 취임 직후 3명이었던 상임이사 멤버를 본인 한 명으로 줄였다. 1조 원대 매출 규모의 회사 의사결정 구조를 사실상 혼자 하는 시스템으로 바꾼 셈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사외이사로 꾸려진 이사회를 통해 회사를 경영했는데, 회의는 회사가 아니라 ‘그린미팅’이라는 명목으로 골프장에서 이뤄졌다.
KT&G 전자공시를 확인해보면 상임이사가 한 명(민영진)뿐인 이사회는 찬성률 95%가 넘는 ‘거수기’에 불과했다. 또 민 전 사장은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투자액 기준을 높여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결정할 수 있는 사업을 여럿 진행했다. ‘제왕적 위치’에서 군림했다는 게 검찰의 평이다.
민영진 전 사장이 사장 자리에 얼마나 연연했는지도 드러났다. 협력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민 전 사장은 첫 번째 임기가 끝난 2013년 초, 새로운 사장을 찾기 위한 사장추천위원회가 발족되자 황급히 받은 돈을 되돌려줬다. 각종 투서가 난무하자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려고 한 것이다.
KT&G와 똑같이 수장이 구속된 재향군인회 역시 과거에나 있을 법한 선거를 진행했다. ‘하나회’ 출신 조남풍 회장은 출마를 하며 처음부터 ‘돈 선거’를 계획했다. 돈이 없었던 탓에 돈을 조달해야 했고, 조남풍 회장은 ‘당선 후 사례’를 내걸었다. 측근 A 씨에게 “선거에 필요한 돈을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대신 선거에 당선되면 재향군인회의 이익단체를 총괄하는 자리를 주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서 넘겼다. 그리고 15억 원이 넘는 돈을 받아 10억 원은 대의원들에게 수백만 원씩 살포했다.
돈을 받은 사람들은 조남풍 회장을 찍었고 당선됐다. 돈 선거가 성공한 셈이다. 돈으로 조직을 접수했으니 돈을 회수해야 한다는 게 조남풍 회장의 인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A 씨에게 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아졌고, 조남풍 회장은 직접 산하 이익단체 자리를 매관매직하기 시작했다.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였다.
자리만 판 게 아니었다. 각종 사업 이권 등 돈이 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팔았다. 산하단체가 외주 주는 일을 넘기겠다는 약속과 함께 측근을 통해 돈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재향군인회가 가지고 있는 산하단체의 이권 사업 규모는 최소 수십억에서 최대 수백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빚을 갚고 돈을 모으려 했던 조남풍 회장이 회장직에 더 있었을 경우 얼마나 범죄 혐의 액수가 늘어났을지 모른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특수수사에 밝은 한 검사의 지적이다.
“최근 수사가 마무리된 농협도 그렇고, KT&G와 재향군인회 모두 과거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보니 부정부패에 대해 잘못했다고 인식하지 않는 부분이 상당했습니다. 학연, 지연에 얽매여 ‘남이 하면 불륜,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착각들을 한 건데 이번 수사를 계기로 조직문화가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겠습니까?”
남윤하 언론인
KT&G 수사 이대로 끝나나 칼집에 칼 넣을 듯 말 듯 착수 당시 현직이었던 민영진 전 사장을 구속하면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김석우)의 KT&G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2013~2014년에 걸쳐 검찰과 경찰이 한 차례 훑어봤다고 하는 KT&G 수사를 재개해 사장을 자진 사퇴시키고 구속시켰으니 성공적인 수사라는 평이 나온다. KT&G와 관련해 모두 7명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고 100% 영장 발부라는 기록은 수사가 얼마만큼 탄탄했는지를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현 수사팀은 민영진 전 사장이 결정한 일련의 로비 과정을 백복인 현 사장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영진 전 사장 재임 시절 백복인 사장은 전략기획실장으로, 사장의 의사결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 하지만 ‘부적절한 지시를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처벌하지는 않겠다는 게 검찰의 입장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백 사장이 민영진 전 사장처럼 협력업체로부터 돈을 받았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현재 검찰은 검사장 인사가 끝나고 차장·부장검사 등 간부급 인사를 앞두고 있어 수사를 확대하기에는 뒤숭숭하다. 수사를 1차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공석 상태이고, 부장검사까지 포함한 인사가 1월 초 예상된다. 그러다보니 인사를 앞두고 모든 특수수사가 잠정 중단된 상태다. KT&G 수사 역시 민영진 전 사장을 끝으로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인사가 나야 수사 확대나 마무리 역시 결정된다. 새로운 수사팀이 와서 앞 팀의 사건을 물려받지 않고, 새로운 수사에 착수하는 특수부의 특성상 KT&G 수사가 이대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 내 중론이다. 하지만 한 중앙지검 관계자는 “KT&G 수사를 진행한 김석우 부장검사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으로 잔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부장검사가 떠나더라도 수사팀 내 인원이 얼마나 남을지에 따라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귀띔했다. [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