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9일부터 8월2일까지 러시아의 고도(古都)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도시 건설 3백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제47회 유럽 바둑선수권대회와 제2회 바둑학회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유럽 바둑선수권전은 스위스식 룰로 진행되는 대회로 하루에 한 판씩, 7월20일부터 25일까지 제1∼5 라운드를 치른 후 26·27일 이틀을 쉬고 다시 28일부터 8월2일까지 제6∼10 라운드를 소화한 결과 한국 선수가, 아마5단 이상 28개국 3백10명이 참가한 메인 토너먼트인 최강부에서 우승을 비롯, 2·3·4위를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시상 대상인 8위까지에 모두 6명이 입상, 바둑 최강국의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한 것.
준우승한 박성균 7단이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아마 바둑계를 대표하는 이른바 ‘전국구’ 정상 가운데 한 사람이며, 우승자 홍슬기 7단이나 공동 2위의 장비 7단 등도 아는 사람은 익히 알고 있는 아마 강자.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이라는 사실이 그 실력을 보증하고 있다.
이들 세 사람의 삼각편대가 이번 유럽 대회 폭격의 선봉이었는데, 대회가 중반에 접어들자 우승의 향방은 일찌감치 이들 한국 3인방의 각축으로 좁혀졌었다. 세 사람 중에서는 실력과 관록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꼽히던 역전의 맹장 박 7단이 준우승으로 밀려나며 새로운 어린 후배에게 우승의 영광을 양보한 것이 이변이라면 이변이었다.
한국팀은 출전자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15명이었는데 메인토너먼트 외에도 속기전에서는, 사업차 아르헨티나에 있다가 뒤늦게 참가한 이혁 7단이 우승했고, 여자부에서 이승현 6단(명지대 바둑학과 4년), 페어부에서 박성균·강나연(명지대 바둑학과 3년)조가 우승을 차지해 실질적으로 대회 전 종목을 석권한 셈이 되었다. 13줄 대회와 9줄 대회, 주말 토너먼트 등에는 학술대회 등 다른 일정과 겹쳐 중도 기권하거나 출전하지를 못했다.
한국 선수단이 유럽 선수권전에 출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1980년대 중반 독일 유학생 유종수 7단이 유럽 콩그레스를 비롯, 유럽 각지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바둑대회를 석권하면서 ‘유럽의 마에스터’로 통했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러시아 유학생 이혁 7단이 부동의 유럽 바둑 제일인자로 공인받고 있다.
아무튼 한국 바둑의 갑작스러운 대거 출동에 유럽 바둑계는 놀라움과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회가 열리면서부터 유럽의 수십 개 바둑 사이트가 불을 뿜으면서 초점을 한국 바둑에 맞추었고 ‘유럽 콩그레스 한국 쇼크’ ‘한국 바둑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등의 제목 아래 연일 앞다투어 한국 선수단의 성적과 동향을 알리는 것으로 도배를 했다.
1990년대부터 한국 프로바둑이 국제대회에서 연전연승하는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과연 한국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런 바둑 강국이 왜 프로 대회가 아닌 세계무대에는 잘 얼굴을 나타내지 않는 것인지, 그런 것들을 의아하게 여기고 있던 유럽 바둑계로서는 이번 한국 바둑의 대거 출동이 그동안의 궁금증을 해갈시키는 한 줄기 소나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바둑협회 알렉 가브릴로프 회장의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최근 유럽의 바둑은 답보상태다. 후퇴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유럽의 최강자 중에는 얼마 전부터는 아예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승부의 긴장감 같은 것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강한 사람과 겨루고 싶어 하지만, 유럽 바둑계에 그들과 겨룰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매년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대국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한국 선수단의 참가가 그런 분위기를 반전시켜 줄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바 크다. ”
유럽 국적은 아니지만 주최측에서 숫자를 맞추느라 영입한(?) 일본의 카이 나오유키 6단은 “이건 한국 대 유럽 올스타가 아니라 한국 대 모든 나라 올스타, 한국 대 다국적 연합군의 대결이다”면서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광구 바둑평론가
▲ [메인 토너먼트 우승 결정국]백 5단 가르첸코 미하일(우 크라이나) 대 흑 7단 홍 슬 기 (한국) (제한시간 각 2시간 30분, 덤 6집반, 2003년 8월 2일, 상트페테르부르크) | ||
다음 백28 귀로 달릴 때 흑이 30의 곳을 받지 않고, 29로 반발한 이후 43(36의 곳 이음)까지 되는 것도 정석적 수순인데 여기서 돌연 44쪽으로 손을 돌린 것이 엉뚱한 실착으로 때이른 패착 1호.
백44로는 46의 곳에 호구치는 것이 온당한 수. 실전에서는 보다시피 흑45로 끊긴 다음에 백46으로 호구쳤는데 때가 이미 늦었다. 흑47로 뻗으면서 우하 일대가 크게 굳어져서는 일거에 대세가 기운 느낌이다.
상변 전투 과정에서 흑89 때 백90으로 반발한 것이 최후의 패착. 흑91로 끊겨서는 회복불능이 되었다. 백90으로는 손을 빼고 다른 곳을 차지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