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 ||
대권주자들은 모두 책을 즐겨 읽는 편이다. 이들은 정치지도자답게 대부분 국가의 철학, 비전 등을 다룬 책들을 많이 읽는다. 또한 책을 통해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기도 하고, 가르침을 얻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6인의 대권주자들에게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무엇인지 또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체 어떤 책의 어떤 글귀가 이들의 마음에 꽂혔을까. ‘잠룡’들의 책보따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고건 전 총리는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시간을 쪼개 책을 읽는다. 고 전 총리는 가장 감명 받았던 책으로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꼽았다. 청소년 시절 ‘백범일지’를 통해 애국심을 길렀고 ‘목민심서’를 통해 공직자의 자세를 배웠다고 한다.
특히 ‘목민심서’는 고 전 총리가 오랜 공직생활 동안 항상 옆에 두고 읽은 애독서다. 고 전 총리는 “‘목민심서’를 통해 ‘지자이렴’(知者利廉) ‘지성감민’(至誠感民)이라는 공직생활의 두 가지 좌우명을 얻었다”며 “‘지자이렴’이란 현명한 자는 청렴한 것이야말로 자신의 미래에 이롭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자신의 창창한 미래를 돈과 바꾸지 말라는 의미다. 또 ‘지성감민’이란 국민이 감동할 때까지 정성을 다 한다는 뜻이다”라고 전했다.
외부 일정이 빡빡한 가운데서도 고 전 총리는 좀처럼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는 최근 읽은 책으로 싱가포르 리콴유 전 수상의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을 들었다. 이 책은 리콴유 전 수상이 부패한 싱가포르 를 오늘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나라로 탈바꿈시킨 개혁과정을 그리고 있다. 리콴유 전 수상이 국제투명성기구(TI·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주는 세계청렴인상 제1회 수상자이고 고 총리가 이 상의 제2회 수상자이기도 해 이 책에 더 애정이 간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은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인도 독립의 영웅 네루 전 수상이 쓴 ‘세계사 편력’을 꼽았다. 이 책은 네루 수상이 감옥에서 딸에게 보낸 옥중서신을 엮은 것으로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세계관과 역사관을 보여주고 있다.
김 의원은 “감옥에 있으면서 네루가 자신의 딸에게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세계의 억압받는 민중들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 실현을 위해 투쟁하는지 설명함으로써 결국 정의는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에 맞서 싸우던 80년대 초 이 책은 접한 김 의원은 “당대에는 패배할지 몰라도 후대에는 그것을 딛고 일어서 결국 승리한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감동으로 왔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좋은 책이 있으면 참모들에게도 함께 읽을 것을 권유하는 김 의원은 2·18 전당대회를 앞두고도 ‘쾌도난마 한국경제’(장하준·정승일 공저)를 읽고 있다. 김 의원은 “이 책의 결론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며 “한국은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그래서 경제가 더 발전해야 하고 정부가 책임 있게 지원하고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고 전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상임고문은 ‘백범일지’와 ‘리콴유 자서전’,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고 전했다.
정 고문은 ‘백범일지’에 대해 민족을 위해 혼신을 다한 백범 김구 선생의 생애를 극명하게 보여준 책이라고 평했다. 실제 정 고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김구 선생이다. 또 ‘리콴유 자서전’은 투명한 정부를 이룩한 과정을 잘 보여줬다는 점에서, ‘산에는 꽃이 피네’는 정신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정 고문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리영희 교수의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청와대 게시판의 ‘공직자가 권하는 한 권의 책’ 코너를 통해 정 고문은 ‘대화’에 대해 “위대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책을 섭렵하는 스타일. 하지만 어린 시절의 그는 너무 가난해 책을 사서 읽을 형편이 못 되었다.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역을 맡으며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 유인촌씨에 따르면 고교 시절 이 시장의 사정을 잘 아는 이웃집 여학생이 그의 집 앞에 책을 놓아두곤 했다고 한다. 이 시장은 밤새워 이 책들을 읽고 다시 그 여학생 집 앞에 가져다 놓았다고.
당시 읽었던 책들이 톨스토이의 ‘부활’,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등 고전 작품들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읽은 책들이어서인지 이 시장은 당시 읽었던 내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불도저’라는 별칭을 가진 이 시장은 보기와 달리 감성적인 글들을 많이 읽는 편이다. 최근에는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된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펴낸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고 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시장은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한 편씩 읽으면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정말 문학의 숲을 거니는 것 같은 감흥을 느낀다”고 전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중국인에 의해 최초로 정리된 중국철학서인 펑유란의 ‘중국철학사’와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꼽았다. 특히 박 대표는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 중 유교에 관심이 많은데 유교의 가르침이 결국 민주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대표는 평소 필독서 목록을 가지고 있다가 틈틈이 읽는 편이다. 자신은 천주교신자지만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영향으로 불교서적도 자주 들춰본다. 최근에는 한류에 관심이 많아 유상철씨 등이 공저한 ‘한류의 비밀’ 등 한류 관련 서적을 읽고 있다고 한다.
손학규 경기지사는 농촌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류달영 선생의 <새 역사를 위하여>를 생애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았다. 이 책은 1864년 덴마크가 전쟁에 패해 남부의 유일한 옥토 두 개 주를 읽고 온 국민이 좌절과 절망에 빠졌을 때 위대한 선각자와 개척자들이 앞장서 조국 덴마크를 인류 최고의 농업국가로 건설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손 지사는 “이 책은 인생과 조국에 대해 새로운 뜻을 세우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이 책을 통해 애국자가 됐다”고 말했다. ‘새 역사를…’를 읽은 후 한동안 손 지사는 농대에 진학해 우리나라를 덴마크와 같은 최고의 농업국가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손 지사는 “그런 생각이 그후 우리나라는 산업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깨우침으로 다가와 한때 공대 진학을 원했다. 종국에는 한 사람의 농업기술자나 공업기술자보다 나라를 이끌 이념을 확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해 정치학과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학자 출신답게 늘 책을 가까이 두고 있는 손 지사는 최근에는 ‘CEO 세종대왕 인간경영 리더십’(최기억)을 읽고 있다. 손 지사는 “어떤 리더십이 21세기 한국의 과제인 선진화와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읽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