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열린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위한 ‘예비경선’에서 정동영 김근태 후보가 악수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는 김두관, 맨 오른쪽은 김부겸 후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2월2일 치러진 열린우리당 예비 경선에서 정동영 고문은 라이벌 김근태 고문을 81표(4.2%) 차로 따돌리고 예선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예비경선은 국회의원 중앙위원 등의 ‘고정표’를 가진 선거인단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선거 전 추측이 거의 들어맞았다. 하지만 전국의 대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밑바닥 정서를 대변하게 되는 2·18 전당대회에서도 이번 예선전과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는 2·18 전당대회는 정-김 두 주자에게 기회이자 추락의 전조가 될 것이다. 이기는 사람은 지방선거의 더 큰 벽을 넘어야 하는 절박함이 있고 지는 경우 당내 위상도 급격히 떨어져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켜진다. 이제 두 사람은 마지막 당내 진검 승부를 통해 여권의 대권 주자로 발돋움해야 한다. 두 잠룡이 펼치게 될 첫 진검승부와 그 이면을 따라가 봤다.
지난 2·2 예비경선의 표면적 결과는 ‘정동영 대세론’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한 셈이 됐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김의 전쟁은 끝이 아니라 극적인 승부를 위한 ‘심판의 동전 던지기’ 정도였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먼저 두 사람의 지지율에 민감한 변화가 감지된다. 1월 초만 해도 정 고문이 김 고문을 두 자릿수 이상으로 앞서간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으나 예비경선 며칠 전 한 여론조사에서는 정 고문이 김 고문에게 3% 뒤쳐진다는 결과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비록 샘플 선정 등에서 차이가 있었고 다른 조사 결과에서는 정 고문이 4~5% 정도 앞선다는 게 일반적 평가였기 때문에 대세를 뒤집을 만한 의미 있는 데이터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뒷짐지고 있던 정 고문측이 받은 충격은 상당히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정 고문측 관계자는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다. 대세론은 무슨 대세론이냐.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할 위급한 상황”이라며 내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김 고문측은 내심 예비경선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표차가 나더라도 많이 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81표라는 비교적 큰 차이의 패배였다. 김 고문은 “아득하던 처음을 생각하면 엄청난 진전이다. 턱밑까지 쫓아왔다”고 자평했다. 특히 김 고문은 “당원 여러분은 여론조사를 통해 저에게 1위와 2.4%밖에 차이 나지 않는 지지를 보내주었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원과 중앙위원 등 ‘상층부’ 기류는 정 고문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기간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희망을 걸어본다는 것이다.
김 고문측이 본선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김 고문의 기동민 보좌관은 이에 대해 “여론조사에서 몇 퍼센트의 격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처음의 절대 열세에서 한 달 만에 ‘당심’이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당원들 사이에서 기존 질서를 가지고 그대로 가는 것보다 새로운 대안을 통해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이런 변화는 많은 가능성을 이야기해 준다. 대의원들도 ‘당심’을 쫓아서 이번 전당대회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김 두 주자 중 한 사람만이 선택받게 되는 2·18 전당대회. 그렇다면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어떤 그림이 그려질 수 있을까. 먼저 정동영 고문이 2위로 패배할 경우. 정 고문에게 2위란 생각해볼 수도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김 고문의 ‘당권파 책임론’이 계속 먹혀들고 ‘양심세력 대통합론’이 당심을 움직일 경우 김 고문이 당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그렇게 되면 정 고문은 바로 아웃(Out) 아니겠는가. 그동안 쌓은 대세론에 금이 가면서 당내 위상도 급격히 추락해 대권 주자로서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 고문이 1위를 차지해 당권을 차지하더라도 크게 웃을 일은 못된다. 무엇보다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을 높여야 하는 절체절명의 숙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 고문이 전권을 쥐고 치른 지방선거에서 참패한다면 그동안의 열린우리당 상황을 볼 때 책임론이 불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대권가도에 오르기도 전에 그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 고문측은 이런 해석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의 한 핵심 측근은 비교적 낙관적인 ‘예상 답안지’를 내놓고 있다.
“먼저 이번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할 것으로 보진 않는다. 서울과 광주 등 최대 6곳에서 광역단체장 석권을 노리고 있다. 그래서 이 계획의 시발점이 될 ‘강금실 영입’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비록 한나라당에 패하더라도 서울 등 몇 군데에서 선전하면 책임론이 대세가 되지 않을 것이다.”
▲ 지난 2일 ‘예비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왼쪽)는 김근태 후보를 81표(4.2%) 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 ||
하지만 이런 정 고문측의 해석에 대한 김 고문측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기동민 보좌관은 이에 대해 “현 상황을 그렇게 낙관적으로 전제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고 본다. 정치적 구호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정치 상황이 그렇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막연히 장밋빛 미래를 심어준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대연합을 이루어내기 위해 폭넓은 변화를 짜내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다. 그 정점에 김 고문이 서서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김 고문의 경우는 어떨까. 먼저 김 고문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2위가 된다면 대권가도에서 정 고문에 한발 밀리며 자칫 ‘영원한 2위’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김 고문측은 “2위를 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2위 전제는 적절하지 않다. 일단 1위가 목표다. 2위를 하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김 고문이 2위를 하더라도 당장 열린우리당을 차고 나가 당을 깨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그 정도로 정치적 미숙아는 아니다. 누가 당 의장이 되더라도 전당대회 결과에 승복하고 지방선거를 위해 같이 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김 고문이 2위를 차지할 경우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지방선거에 전력 투구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이 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정 고문에게 책임론이 돌아가게 되고, 그 자리를 김 고문이 다시 노릴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 고문측 한 관계자는 “만약 정 고문 책임론이 일게 되면 그 대안으로서 2위 김근태 고문을 열린우리당 당원들이 선택할 것이라고 보나. 절대 그렇지 않다. 사태가 그렇게까지 악화되면 2위 김 고문의 존재도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본다.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제안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만약 김 고문이 전당대회에서 1위를 하게 된다면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대권주자로서 크게 도약할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박빙의 승부에 따른 결과로 당내 갈등이 커지고 정계개편의 불씨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치열한 싸움에서 ‘노심’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노 대통령은 두 사람이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가진 청와대 모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엄정 중립을 함축한 말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과연 ‘노심’이 어디에 더 가까운지를 놓고 여러 말들이 오간다.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정 고문에게 일종의 부채의식 같은 게 있다. 2002년 민주당 경선의 완성을 위해 끝까지 레이스를 함께해준 데 대해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대선 과정에서도 노 대통령 당선에 헌신적 역할을 해준 정 고문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에 반해 김 고문에게는 그런 부채의식이 전혀 없다. 오히려 경선 전 김 고문에게 몇 번 도움을 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던 쓴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김 고문이 노 대통령 흔들기를 통해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는 데 대해서도 실망한 것 같았다. 이런 점들이 ‘노심’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향후 두 사람의 정치적 미래와는 깊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노심’이 두 사람 모두에게서 떠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해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얘기할 때부터 현재의 유력 주자를 전제로 한 대권 구도를 그리는 게 아니라 내각제 대연정 등 여야를 아우르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이 전당대회 과정에서 ‘노심’과 관련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도 관심을 모은다. 과연 노 대통령을 밟고 갈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며 청와대에 어깨를 기대는 전략을 택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두 사람의 고민은 또 다른 곳에 있다. 국민들이 전당대회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 대한 낮은 지지율 때문에 누가 되든 ‘도토리 키재기’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3명 정도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지지자들과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에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층에서도 전당대회에 관심을 보인 응답자는 40%에 그쳤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마지막 승부’에서 이기더라도 지방선거와 그 뒤 대선에서 국민들의 냉혹한 심판을 다시 한번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정-김의 전쟁이 더욱 외롭게 보이기도 한다.
이번 예비경선을 통해 양측은 감정적 대립을 자주 보여왔다. 그래서 일부에선 앞으로 두 사람이 한 배를 탈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두 사람 중 누가 패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닐 수 있다. 정치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 패배를 딛고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그 생명력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