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팀 관계자들은 쿠엘류 감독이 코치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고 전했다. | ||
A코치는 경기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감독이 ‘방송용 멘트’로 경기를 잘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불가리아전이 끝난 뒤 말수 적기로 유명한 B코치까지 감독의 경기 운영에 대해 감정 섞인 의견을 내놓았을 만큼 코칭스태프들이 본 불가리아전은 그렇게 보길 소원했던 쿠엘류 감독의 색깔도, 전술도, 카리스마도 없는 밋밋한 경기였던 것이다. 불가리아전이 벌어졌던 당시 벤치에서 일어난 상황과 쿠엘류 감독과 한국 코치들이 벌이는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되짚어본다.
불가리아전 후반 26분 안정환의 대포알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자 쿠엘류 감독은 안정환을 빼고 차두리를 투입시켰다. 그러나 교체 지시 직전 코치들은 ‘안정환을 빼지 말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0-1의 상황에서 동점을 만들려면 공격수를 빼기보다는 미드필더를 처진 스트라이커로 올려보내 공격쪽을 보완하고 미드필더나 수비쪽에서 선수를 교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쿠엘류 감독은 코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안정환을 불러들였다.
A코치는 “감독은 동점 만들기보다는 더 이상 골을 먹지 않으려는 지키기 작전을 구사했다. 감독 말대로 친선 경기라면 어떻게 해서든 골이 날 수 있게끔 선수들을 구성했어야 한다. 0-1로 지나 0-2로 지나 지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더욱 과감하고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어야 하는데 정말 안타까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해외파들을 모두 투입해서 경기력을 시험해봐야 한다’는 쿠엘류 감독의 주장도 A코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부분. 그동안 대표팀 감독 부임 후 모두 열두 경기를 치렀는데 언제까지 선수를 시험하고 테스트하는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A코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쿠엘류 감독의 ‘무대책’에 대해 실망감만을 곱씹고 있다며 주저함 없이 이런 이야기를 토로했다.
“전반전 끝나고 코칭스태프 미팅 시간에 후반전의 경기 상황을 미리 체크해보려 했지만 감독은 얼굴만 벌개진 채 어떤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선수들이 상대의 밀집 수비에 막혀서 공격을 제대로 풀어가지 못한다면 벤치에서 어떤 작전을 통해 그 문제를 풀어줘야 하는데 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뭔가’를 제시하지 못하더라. 코치 말엔 귀를 닫아버리고 통역과 피지컬 트레이너하고만 의견 교환을 하는데 솔직히 내가 이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조차 의문이다.”
경기 전날 처음으로 전술 훈련을 했는데 선수들이 감독의 ‘작전’을 이해하지 못해 여러 차례 되묻는 일이 속출했다고. 월드컵 출신의 선수들이 나중에는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알아서 잘 하기’로 무언의 약속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시스템대로 운영하기를 고집한다면 코치는 있을 필요가 없다. 정말 유능한 감독이라면 다소 듣기 싫은 조언이라도 일단 다 수용해야 한다. 왜 코치를 자꾸 ‘적’으로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감독은 임기만 마치고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이런 식의 대표팀 운영이 지속된다면 한국 축구는 암흑 그 자체다.”
A코치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으로 과거 우루과이전을 앞두고, 그리고 오만에서 시합 이틀 전 훈련시간에 5:5게임을 하거나 족구시합을 하며 전술훈련을 소홀히 했던 것을 꼽았다. 이 부분은 훈련일지에 그대로 기록해서 협회에 제출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감독의 훈련 방식에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한 고위 관계자가 없었다고 한다.
“해외파가 다 모인 상태에서 대표팀 실력을 따져보면 언제든지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분위기만 만들어지면 능력을 120% 발휘할 수 있는 선수들을 왜 그냥 방치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의 대표팀은 감독 스타일대로 운영되기보다는 선수들이 ‘알아서’ 이끌어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베트남전과 오만전 이후 ‘재신임’을 받은 쿠엘류 감독에 대해 “‘뚜껑’ 닫아서 김 새는 거 막으려 했다가 ‘뚜껑’까지 날아가는 거 아니냐”며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들의 무사안일주의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12월4일부터 일본에서 펼쳐지는 동아시아선수권대회는 또 한 차례 쿠엘류 감독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들고 돌아온다면 쿠엘류 감독은 다소 심각한 상황에 빠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