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올림픽대표팀에서는 맏형이자 리더 역할을 해나가지만 성인대표팀에 합류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막내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큰집’과 ‘작은집’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하는 젊은 태극전사들의 이유 있는 하소연을 한 번 들어봤다.
▲ 왼쪽부터 최원권, 김두현, 김동진, 최성국 | ||
이런 분위기에 제일 적응하기 어려운 선수들은 역시 눈치 안 보고 편안하게 생활하던 올대 출신 선수들. 일단 나이 차가 나다 보니 가뜩이나 접근하기 어려운 대선배들 앞에서 말수가 적어지고 군기가 바짝 들어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최성국은 “올대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성대에 합류하게 되면 이전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그리워진다”며 나이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를 설명했다.
사실 태극마크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상의 목표. 그러다보니 막상 국가대표가 되는 순간, 지금까지 가졌던 상상과 현실이 오버랩되는 묘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최원권은 “TV로만 봐 오며 동경했던 선배들과 함께 뛴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게 사실”이라면서 “그래서인지 막상 훈련을 함께하다 보면 선배들한테는 접근하기 힘든 뭔가가 있다”며 보이지 않는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이런 엄숙한 분위기는 존경하는 선배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많다 보니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문제는 선수들 개개인마다 갖고 있는 ‘자신감’을 쉽게 드러내 놓지 못한다는 것.
특히 실전(시합)에서 막내들이 감히(?) 선배들 앞에서 의사표시를 한다는 것은 여전히 망설여지는 일이다. 지난 겨울 동아시아축구대회 한·일전에서의 일화를 통해 올대 출신들의 애로사항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장면 #1. 왼쪽을 돌파한 안정환이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 슈팅으로 연결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상황이었고 센터링을 올리면 득점까지 연결될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안정환은 문전에 있던 올대 후배가 못 미더웠는지 욕심을 내어 슈팅을 했고 결국엔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어휴, 그냥 올려주지.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후배는 ‘꾸욱’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장면 #2. 시합 도중 최진철이 실수를 하자 곧 유상철과 김태영이 주의(?)를 주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불똥이 옆에 있던 새내기에게까지 돌아가고 말았다. 최진철이 가뜩이나 선배를 어려워하는 후배를 부르더니 잘못을 공유(?)하며 심하게 다그쳤던 것. 순간 그 새내기는 오로지 “얼른 나이 먹어야겠다”는 생각만 떠올렸다고.
올대 선수들은 선배들과 호흡 맞추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특히 수비수에는 베테랑 선수들이 많아 후배들이 그라운드 위에서도 어려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면 #3. 문전 앞에서 좋은 프리킥 기회가 생겼다. 전날 프리킥 연습에서 쿠엘류 감독에게 칭찬까지 들었던 바로 그 위치였다. 그러나 ‘막내’에게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안정환과 유상철 등 대선배들이 귀엣말을 나누더니 바로 실행에 옮기고 말았던 것. 막내는 속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한 번만 차게 해주지….”
이런 분위기에 대해 최성국은 “올대에서는 ‘내가 할게’라고 하면 되지만 성대에서는 기회를 주면 고마운 것이고 아니면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실전에서 맛보는 ‘막내’의 설움은 경기장 외적인 곳에서도 이어진다. 식사시간에 막내들은 눈치껏 선배들의 그림자를 따라야 한다. 식당 테이블에 미리 식사가 차려져 있을 때에는 요령껏 앉으면 되지만 식판을 들고 돌아야 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형님 먼저’를 실천해야 한다. 선배들이 결코 눈치를 주는 건 아니지만 ‘물 서비스’ 역시 센스 있는 후배의 몫이다.
이런 ‘장유유서’ 정서에 대해 김동진(안양 LG)은 “식사시간 말고 마사지도 막내들은 언제나 뒷전”이라면서 “함께 훈련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떡∼하니 누워 선배를 기다리게 하는 간 큰 후배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합숙하는 동안에도 새내기들은 ‘순한 양’을 자처한다. 올대에서는 이 방 저 방 할 것 없이 들어가는 방이 모두 자신의 방이 되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원권은 “사실 올대의 합숙은 조금 풀어져 있다고 할 정도로 자유스럽다”면서 “그런데 성대 선배들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무게감’이 느껴진다”며 답답한 점도 많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