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철 감독은 입대 초기 ‘군인의 길’ ‘군가’ 등의 암기 여부를 테스트하는 시험이 두려웠다고 한다. 뭔가를 외우는 일에 도통 자신이 없었던 김 감독. 결국 커닝을 결심하고 실행했는데 결과는 김 감독이 90점을 넘었고 나머지 8명의 동료 선수들은 50점대를 오락가락했다. 그런데 교관이 하는 말이 이랬다. “다음 시험부터 지금 받은 점수보다 떨어지는 사람은 맞을 각오해!” 그후론 김 감독의 엉덩이에 불이 날 수밖에 없었다.
▲ 신치용 감독 | ||
새벽 점호에 신고 나갈 ‘통일화’ 때문에 웃지 못할 사건도 벌어졌다고 한다. 발이 큰 배구선수들을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 ‘통일화’는 다른 대원들의 것과는 달리 신발장 맨 위에 따로 분리해서 놓았다. 그런데 어느날 새벽 6시에 연병장 집합을 하는데 제일 발이 컸던 신치용 감독의 ‘통일화’가 없어진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사이즈가 작은 신발 한 켤레. 할 수 없이 꾀를 낸 신 감독은 신발 뒤쪽을 동그랗게 오려낸 후 발을 집어넣을 수 있었는데 연병장에서 이 사실이 결국 들통나고 말았다. 그날 신 감독은 ‘국가물품 훼손죄’로 뒤꿈치가 오려진 ‘통일화’를 입에 물고 연병장을 여러 바퀴 돌아야 했다고 한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