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행이 무산된 메추 감독(왼쪽). 결국 지난 30일 대한축구협회의 ‘메추 내정’ 발표(오른쪽)는 세계적 ‘망신’으로 끝나고 말았다. | ||
100% 대한축구협회의 잘못이다. 지난달 30일 기술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메추의 한국대표팀 감독 내정 발표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메추와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협회내부에서도 손발이 맞지 않았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메추를 후보가 아닌 내정자로 발표했지만 실무진이었던 국제국은 복수후보 발표를 원했던 것. 협상의 가장 기본 원칙을 어긴 셈이다. 이로 인해 메추는 칼자루를 쥔 셈이 됐고 협회는 이후 끌려가는 양상을 연출했다.
하지만 메추에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서울발 기사를 받은 외신들이 메추가 차기 한국감독으로 확정됐다고 전 세계에 타진하는 바람에 메추는 코너에 몰렸다. 아랍에미리트(UAE) 소속구단이었던 알 아인과 사전 고지를 비롯한 신의성실의 계약을 맺고 있던 메추는 구단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 한국 감독설을 부인하고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알 아인의 구단주인 모하메드 왕자는 불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메추에 대한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알 아인과 메추는 감정의 대립각을 세우게 됐다.
허정무 기술위부위원장은 “투명한 절차를 요구한 것이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언론의 앞서가는 보도에 대해 불만을 털어놨지만 누가 먼저 최종 후보는 한 명이라고 발표했는지를 곱씹어야 한다.
메추가 안이하게 생각했다. 메추는 팀을 옮길 경우 미리 구단에 알려야 한다는 계약을 알 아인과 맺었다. 리그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메추는 구단측이 자신의 의사를 존중할 것으로 생각했고 위약금 규정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자신을 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알 아인의 입장은 단호했다. 특히 모하메드 구단주는 메추가 일절 상의도 없이 카타르와 한국대표팀을 놓고 협상을 벌였다는 사실에 진노했다. 알 루메티 집행위원은 “메추는 ‘스스로를 광고하고 다니는 나쁜 협상자’”라며 그를 비난했다.
당황한 메추가 카타르와 한국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알 아인은 이미 떠난 버스였다. 알 아인 구단은 위약금 1백50만 유로(약 20억원)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버텼고 메추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때까지도 메추가 알 아인과 잘 풀 것이라고 마치 제3자인 것처럼 행동했지만 메추를 간절히 원하던 카타르 알 이티하드 구단은 위약금 중 80만 유로(약 11억원)를 대신 내주겠다고 발빠른 대응을 했다. 메추로서는 알 이티하드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졌고 결국 알 이티하드행을 결정했지만 메추의 행보는 여전히 ‘안개 정국’을 헤매는 중이다.
대한축구협회가 메추를 너무 과신했다. 메추가 카타르 알 이티하드와 협상을 벌인 것은 개인적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측으로부터 만족스런 연봉을 제시받지 못한 상황에서 알 이티하드의 1백70만달러 제안은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메추는 카타르와 접촉하면서 알 아인구단과 한국측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대표팀에 관심이 있다는 메추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카타르행에 대해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메추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메추는 감독직 계약으로는 이례적으로 알 이티하드와 1년 계약에 1년 옵션계약을 합의했다. 메추는 한국과 협상이 틀어질 경우에 대비해서 1년 뒤를 기약한 것이다. 1년간 알 이티하드를 맡은 뒤 월드컵 본선 진출팀 중 기회가 닿으면 2002월드컵에 이어 월드컵팀 감독으로 가고 여의치 않으면 연봉 2백만달러의 알 이티하드의 지휘봉을 계속 잡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알 아인이 요구하는 위약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카타르행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협상도중 라이벌인 카타르 클럽이 등장했는데도 메추에 일방적인 짝사랑을 보낸 축구협회의 탁상행정은 두고두고 비판당할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히딩크의 성공과 메추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중간에 쿠엘류 감독이 있었지만 선임 과정 자체는 히딩크 때와 마찬가지로 칭찬받을 만했다. 두 감독 영입은 철저한 비밀로 진행됐다. 그러나 축구협은 여론을 의식해 투명한 공개에 집착한 나머지 메추에게 너무 많은 카드를 꺼내보였다. 특히 한 명의 최종 후보를 발표하는 바람에 축구협회는 단 한 장의 카드도 손에 남겨두지 않는 우를 범했다. 대한축구협회가 2002월드컵을 지나 세계 축구 행정과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무색하게 만든 패착이었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