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영 장소연 한송이 선수(왼쪽부터)가 김철용 감독의 스파이크를 받는 기자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다. | ||
강스파이크와 환상적인 수비가 어우러진 배구코트에서 청일점 기자도 어설프게 흉내(?)는 내보려고 했는데, 지난주 여자유도 선수한테 참패를 당했던 쓰라림이 채 아물기도 전에 이어진 여자 배구선수들과의 공 싸움은 입에서 단내 날 정도로 힘들었고 손목은 퍼렇다 못해 뻘개진 처절한(?) 현장 체험이었다.
지난 8일 국제배구연맹(FIVB)이 발표한 조 편성에 따르면 한국은 이탈리아와 예선 첫 경기를 시작으로 그리스, 케냐, 일본, 브라질과 차례로 붙게 돼 조 4위까지 진출권이 주어지는 8강 토너먼트엔 무난히 안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철용 감독도 이번 조 편성에 대해서 “그리스, 케냐 등 약체팀들이 있어 조4위까지는 무난할 것”이라는 자신감과 함께 “상위 순위로 올라가야 다른 조 하위팀들과 붙기 때문에 매 경기가 피 말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편성이 발표된 다음날 체육관의 분위기는 한층 여유가 있고 밝아 보였다. 이날은 저녁에 전공 시험을 치르는 대학원생 선수들을 배려해서 오후에 있을 전술 훈련을 오전 10시로 변경해 실시했다.
모든 종목의 시작은 스트레칭이었다. 점프와 슬라이딩이 많은 배구 선수들한테 스트레칭은 무엇보다 중요한 예비훈련이었다. 본격적인 전술 훈련을 앞두고 느닷없이 ‘얼음땡’과 ‘다방구’와 같은 고전 놀이가 등장했다. 코치, 트레이너, 선수 모두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돌아가 강도 높은 훈련을 하기 전의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땀을 배출하는 등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 나갔다.
드디어 선수들이 맨투맨으로 스파이크와 리시브로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절간처럼 고요하기만 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확 달아올랐다. 바로 여인네들의 낭랑한 기합소리 때문이었다.
대표팀의 세터인 김사니(한국도로공사)의 부드러운 스파이크를 언더토스로 열심히 받았다. 혼자만 기합소리를 안내면 안 될 것 같기에 ‘아이~’라며 선수들의 외침을 따라했다. 옆에서 유심히 보던 왕언니 장소연(현대건설)이 “저기요, 아이~가 아니고 어이~거든요”라며 기합소리까지 지적해주며 웃었다.
코트 반대편에서는 김철용 감독의 특별 훈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김 감독이 말을 건네면서 또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향하며 가볍게 툭툭 던지는 볼을 속지 않고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민첩성과 순발력 없인 제대로 소화해내기 어려워 보였다. 정신없이 내리 꽂히는 볼을 이리 넘어지고 저리 뒹굴며 받아내자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잘 속이세요? 연기수업 받으셨어요?”라는 기자의 항의성(?) 질문에 김 감독은 “이런 혹독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시합에서 선수들이 어떤 방향으로라도 몸을 반사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며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선수들이 10분 휴식을 취하는 동안 김 감독의 특별 개인 훈련 명령이 떨어졌다. 여자 선수들과 함께 스파이크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잔뜩 겁을 먹은 채 체중이 크게 실리지 않은 스파이크를 몇 개 받아내자 여자선수들의 ‘오호~’하는 격려가 쏟아졌다. 순간적으로 우쭐한 기분에 빠져있는데 본격적인 강스파이크가 시작되었다.
날아오는 볼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엉덩이를 뒤로 빼자 곧장 여자선수들이 “에헤이, 어디서 저렇게 배웠을꼬. 앞으로 숙여요!”라며 ‘태클’을 걸어왔다. 자세가 좋으면 “그렇죠! 뒤로 갔다 한발 앞으로!”라며 파이팅을 외쳤다. 아마도 볼을 받는 건지 몸에 맞는 건지 도통 정신을 못 차리는 기자가 안쓰러웠나 보다. ^^;;
세 시간이 넘는 훈련을 마친 이후 현재 양 팔에는 푸르딩딩한 멍들이 일렬로 자리를 잡았고 무릎은 진원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처들로 도배돼 있다시피 한다. 허벅지마저 근육통으로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환자’가 돼 버렸다. 그래도 이 멍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건 잠시라도 정상급 대표선수들과 함께 했다는 자부심 때문이 아닐까.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