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엉거주춤한 자세로 스틱을 들고 ‘대단한 체험’에 임하고 있는 기자 | ||
지난 18일 태릉선수촌 운동장에서 구릿빛 피부의 파워우먼들과 난생 처음 스틱을 잡은 만년 초보 기자 사이에 열띤 승부가 벌어졌다. 스틱을 잘 다루지 못해 볼을 ‘만진’ 시간보다 ‘주우러’ 다닌 시간이 더 많다 보니 훈련을 자발적으로(?) 꽤나 한 것 같다. 그냥 뛰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정도인데 허리까지 숙이고 스틱까지 다뤄야 하는 삼중고를 톡톡히 만끽한 여자하키 선수들과의 ‘대단한 체험’ 현장을 소개한다.
70분 동안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종목의 특성상 선수들의 체격이 우람할 것으로 예상한 것과는 달리 여자하키 대표팀 선수들은 너무나 아담하고 왜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전에서 부딪힌 여자선수들의 체력과 파워는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16년째 대표팀을 맡아오고 있는 김상렬 감독과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돌아온 감독의 말은 “크게 염려할 건 없고 볼 한 번 잘못 맞으면 골절밖에 더 당하겠소?”라는 가슴 철렁한 협박용(?) 멘트였다.
몸을 푼 선수들이 스틱을 갖고 곧장 훈련에 돌입했다. 보통 선수들이 훈련을 시작하면 옆에서 어설프게 흉내라도 내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만큼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져보는 스틱을 가지고는 상대 선수와의 패스는커녕 몸을 가누기도 어려웠고 낮게 깔려오는 볼의 스피드가 두려움을 넘어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서웠기 때문이었다.
골키퍼 박용숙(KT)이 잠깐 쉬는 동안 기자의 일일 조교로 변신했다. 10여m 떨어져 쳐주는 볼을 제대로 받아서 다시 정확하게 돌려보내는, 보기에는 아주 단순해 보이는 연습이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볼을 제대로 정지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준비동작이 조금만 늦어도 ‘알까기’ 일쑤였고 제대로 정지시킨다 하더라도 볼은 스핀을 먹고 잘도 튕겨나갔다.
거리를 조금 멀리 하자 선수가 ‘탁~’하고 쳐주는 스틱과 볼의 마찰음이 경쾌하게 울려왔다. 받는 기자도 ‘착~’하고 제대로 받으면 그림이 좀 되겠지만 ‘틱’하며 엉거주춤 받는 모습이 영 불만스럽다. J자 모양의 스틱 끝으로 볼을 자유자재로 다루기도 쉽지 않았고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움직임이 많다 보니 운동 강도는 훨씬 강하게 전달되어 왔다.
▲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선수들 | ||
먼저 자세교정부터 들어갔다. 볼을 치거나 받는 순간 다리의 위치, 팔과 스틱의 각도, 시선 처리 등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김 감독의 파워 스윙에 주눅이 든 기자가 자꾸 뒤로 물러나자 김 감독의 주문은 하나였다. “앞으로! 앞으로!”. 결국 거리는 좁혀져 불과 3m도 되지 않은 짧은 간격을 두게 되었다. “위로 뜨는 볼도 잘 받아야 한다”는 그럴 듯한 이유로 눈앞에서 볼을 띄어주는 김 감독. 당연히 기자는 스틱으로 정확하게 ‘막는’ 게 아니라 몸으로 연신 ‘맞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김 감독의 장난에 속았다는 걸 알았지만 “이것도 볼에 대한 공포심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며 김 감독은 너스레를 떨었다.
스틱과 볼에 대한 감각을 조금 익히고 페널티 코너에서 슈팅 연습하는 것으로 훈련을 마무리했다. 페널티 코너는 실제 시합에서 가장 득점이 많이 나는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정교하면서도 파워풀한 슈팅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었다. 스피드와 파워를 만회하기 위해 조금 세게 치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 허공을 가르는 헛스윙이 어김없이 나왔다. “골키퍼를 속이기 위한 페인팅”이라며 서둘러 수습해 보지만 이미 터진 선수들의 웃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곧이어 기자가 분위기를 흐려 놓았는지 선수마저 어이없는 슈팅을 하자 옆에서 들려오는 말이 압권이다. “너도 촬영하니? ^^;;”
88서울올림픽 은메달, 92바르셀로나 4위,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여자하키. 승패를 떠나 시합 후 검게 그을린 피부의 여자선수들이 감독과 얼싸안고 우는 장면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많은 스포츠 종목 중에서 왜 하필 여자하키에서 유독 그런 진한 감동을 느꼈을까. 김 감독의 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인생에서 가끔 그런 눈물도 있어야 살맛나는 거 아니겠어요?”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