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병훈(이): 야, 친구야. 아픈 데는 없냐?
장종훈(장): 응, 전혀 없다. 아픈 곳이 없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게 더 답답하다.
이: 너 요즘도 맨날 새벽까지 스윙 연습하냐? 미친 ×처럼?
장: 에이, 옛날 얘기지. 정말 예전에는 스윙 개수 안 따지고 무식하게 연습했지. 근데 꼭 날이 밝을 때 쯤 ‘필’이 오더라. 그래서 밤새운 적도 숱하게 많았다.
이: 그 당시 코치들이 그만하라고 말렸다며?
장: 응, 맞아. 잠을 안자고 연습하니까 코치들도 불안했던 게지. 근데 전성기 때는 남들 잘 때 같이 자면 눈이 감기질 않았어. 불안해서 잠이 안 왔던 거야. 한마디로 연습에 ‘중독’된 거였지.
이: 너, 예전에 이상한 징크스 있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장: 야, 그런 건 좀 제발 잊어 버려라. 정말 일급 비밀인데…. 배성서 감독님이 팀을 맡을 당시였어. 경험 없는 내가 하도 쫄아 있으니까 감독님이 다가와선 갑자기 나의 중요 부위를 만지며 자신 있게 치라고 하시는 거야. 근데 신기한 건 진짜로 긴장이 쫙 풀리면서 홈런을 쳤다는 사실이지. 그때부터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누구의 도움 안 받고 ‘자진 상납’하곤 했잖아. 푸하하.
이: 전성기 때는 마음만 먹으면 홈런치지 않았냐?
장: 91년에 홈런, 타점, 장타율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었는데 말이야. (잠시 생각에 잠기다) 그때는 홈런을 알고 쳤어. 심지어 타석에 나가면서 동료들한테 “나, 이번에 홈런친다”하면 거의 홈런이 나왔어. ‘예고 홈런’이라고 너도 알지?
이: 몰라 ×야. 그런데 다음 해에 더 잘했잖아.
장: 92년에 홈런을 41개 쳤어. 그때가 최고의 전성기였지. 그 당시의 손맛은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이: 그런데 장종훈이란 야구 선수가 ‘서서히’ 맛이 간 거냐? 아니면 ‘갑자기’ 맛이 간 거냐?
장: 솔직히 2001년에 ‘맛탱이’가 갔다. 그해 5월 초까지 타율, 홈런이 1위였거든. 그런데 잘 나가다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부상을 입어서 그해 12월에 수술을 했어. 그때부터 타격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지.
장: 진짜 힘들었던 시절이었어. 주로 대주자로 나갔는데 아픈 곳도 없이 대타가 아닌 대주자로 뛰니까 자존심도 많이 상했고 솔직히 의욕 상실증에 걸렸었지.
이: 요즘에는 홈런 치면 어떤 기분이 드니.
장: 한창 때는 홈런을 치면 목표에 다가서는 느낌이었어. 시즌 전에 세웠던 목표 말이야. 그때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거든. 그런데 요즘은 홈런 치면 기분이 ‘뿅’가는 느낌이야. 가끔 쳐서 그런가?
이: 예전에 비해서 팬들이 많이 줄어들었을 거야.
장: 어허, 무슨 소리. 아직도 야구장 주차장에서 내 사인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팬들이 제일 많다는 걸 모르는구나. 사실 나는 사인해달라면 아무리 바빠도 다 해주는 편이거든.
이: 아줌마, 아저씨 팬들이 90%가 넘잖아.
장: 그분들은 ‘팬’이 아니고 그냥 내 ‘편’이야.
이: 요즘 체력 관리는 집사람이 해주냐? 아니면 네 스스로 챙기는 편이냐?
장: 나 담배 끊은 지 19개월 됐다. 젊을 때 밤새 스윙하는 것보다 담배 끊는 게 더 힘들더라. 술은 특별한 자리가 아니면 삼가고 가급적이면 쓸데없는 데 체력 소모 안한다.
이: 그나저나 네가 네 기록을 스스로 깨고 있는데 그 기분이 어떠냐?
장: 내가 여전히 기록에 욕심내는 이유는 내가 내 기록을 자꾸 깨면 그만큼 후배들이 분발할 거고, 그만큼 프로야구가 발전하지 않겠냐. 그래서 내 기록을 내가 깨도 기분은 째진다.
이: 네 아들내미가 야구 천재라며?
장: 운동 신경은 좋아. 애들이 하겠다고 하면 시킬 거야. 그런데 이것들이 아빠가 ‘홈런왕’이었다는 걸 안 믿어. 요즘 아빠만 보면 “아빠는 왜 시합에 안 나와? 무슨 홈런왕이 올해는 3개 밖에 못쳐?”하며 약을 올린다니까.
이: 그래도 한때 잘 나가는 ‘홈런왕’이었는데 돈은 많이 모았겠지.
장: 내가 알뜰한 편이잖냐. 전성기 때는 연봉 인상 상한선이란 게 있었어. 전체 연봉도 적었고. 그런데 전성기가 지나고 나니까 연봉 상한선도 없어지고 전체 연봉도 오르더라고. 사실 야구해서 모은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요즘 전성기라면 구단은 코피 좀 터졌겠지.
이: 그럼 앞으로 연봉 올라갈 일 없겠네. ‘삐꾸’ 생활의 어려움 좀 얘기 해봐라.
장: 요즘은 대타로 많이 나가잖아. 한 경기 동안 내가 그라운드에 서 있는 시간이 많아야 1~2분이야. 그래서 대타로 나가면 긴장되고 흥분이 돼. 그게 오히려 즐거워진다. 물론 못 치면 열은 받지만.
이: ‘삐꾸’임에도 불구하고 열렬히 널 응원하는 수많은 아저씨, 아줌마 ‘편’들께 인사 올려라.
장: 장종훈 ‘편’님들. 정말 감사해요.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응원에 비하면 제 활약이 너무 미흡하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장종훈이 아닙니다. 자신 있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장종훈이 1~2분 ‘땜빵’이 아니라 주전 선수로 거듭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