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저스측의 주장은 간단하다. 더블A 두 경기에서 11⅓이닝 동안 11실점으로 방어율 8.74를 기록한 박찬호는 아직도 허리가 완전치 않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복귀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이다. 레인저스는 박찬호를 그대로 DL에 두고 당분간은 더 재활 등판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미 30일간의 재활 등판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다시 30일간의 재활 등판을 시키려면 선수 본인의 허락을 받아야하는데, 박찬호로서는 뾰족이 거절할 명분이 없어 이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찬호는 지난 19일 샌안토니오에서 두 번째 더블A 재활 등판을 마친 후 현역 복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허리에도 이상이 없고, 빅리그 복귀 준비가 끝났다는 것이 본인의 의사였는데, 불과 이틀 만에 구단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나타내자 ‘아직 허리가 완전치 않아, 경기 초반에는 뻣뻣함을 느낀다’며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몸에 이상이 없다는 선수를 마이너리그에 두려는 구단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혹시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에 앞서 올시즌 다른 유명 투수들의 성적을 잠깐 살펴보자.(괄호안은 방어율과 성적) 양키스의 마이크 무시나(5.20, 9승6패) 애틀랜타의 마이크 햄턴(4.95, 5승8패) 보스턴의 데릭 로우(5.75, 8승9패) 애나하임의 바톨로 콜론(6.12, 7승8패) 다저스의 히데오 노모(8.06, 3승10패).
올 시즌 각 팀의 주전급 선발 투수들 중에 부진한 선수들의 방어율과 성적이다. 대부분 거액의 연봉을 받는 투수들이지만 방어율이 형편없고, 무시나를 제외하면 성적도 영 시원치가 않다. 그런데 박찬호는 방어율 5.80에 2승4패다. 올시즌 여덟 번 선발 등판해서 나온 성적이다.
과연 텍사스가 박찬호를 꾸준히 기용, 지금쯤 20번 가까이 선발로 등판시켰다면 어떤 성적표를 받아냈을까. 위의 선수들처럼 형편없는 성적을 거뒀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텍사스의 불꽃 타선을 등에 업고서도 말이다.
가설에 불과하지만 박찬호도 충분히 햄턴이나 로우, 혹은 콜론 정도는 던지며 6승에서 승운이 따르면 8승 정도를 거뒀을지 모른다. 물론 노모처럼 패전만 쌓였을 수도 있지만, 노모의 경우 어깨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다저스는 노모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기 전까지 선발의 기회를 빼앗지 않았었다.
다른 팀에서처럼 주전급 투수들의 경우 웬만한 부진에도 꾸준히 기회를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을 보면 박찬호의 신세가 더욱 처량해 보인다. 더욱이 레인저스는 현역 복귀는커녕 예정된 60일의 기간이 지나자 이제 박찬호에게 허리 상태를 다시 검사하고 오라며 콜로라도행을 요구했다. 박찬호를 부상자 명단에 남겨둘 명분을 찾고 싶어 안달인 모양이다.
과연 구단의 의도가 ‘보험금 타먹기’인지는 입증할 방법이 없다. 고액 연봉 선수의 보험은 각 선수마다 내용이 모두 다르고, 좀처럼 공개되는 법이 없어 박찬호의 경우 어떤 방식의 보험을 들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박찬호가 한 시즌에 90일 이상 부상으로 뛰지 못하면 구단이 많게는 연봉의 70~80%까지를 보험사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현지 언론과 팬들의 타깃이 될 정도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박찬호를 차라리 DL에나 오래 남겨, 보험료도 타고 구단에 쏟아지는 빈축도 피해보자는 것이 레인저스의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런 가운데 <스포츠위클리>는 최신판에서 박찬호가 프리에이전트가 될 수 있음을 언급했고, 일부 국내 언론이 이를 부풀려 보도하기도 했었다. 규정상으로는 만약 박찬호가 현재의 사태에 불만을 제기해 정식으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에 불평 접수를 할 경우 자유계약선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박찬호가 프리에이전트를 택한다면 남은 2년간 2천9백만달러(약 3백50억원)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므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일이 꼬이기 시작했을까?
문제의 발단은 박찬호가 DL을 자초한데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5월20일 캔자스시티전 등판 후 박찬호는 경미한 허리 통증을 느꼈다. 과거 같으면 그냥 혼자만 알고 지낼 정도로 큰 통증은 아니었지만, 무리했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는 박찬호는 15일자 DL에 올라도 한 번 정도 등판을 쉬고 나면 복귀할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구단에게 빌미를 준 셈이 되고 말았다.
구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박찬호를 거의 억지로 부상자로 만들다시피해 장기간 결장을 유도한 뒤 계속해서 DL에 머물게 할 방법을 모색했다. 박찬호 본인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당장 준비가 됐음을 입증하지 못했으니 재활등판을 계속해야할 판이다. 더구나 레인저스는 AL 서부조 선두를 달리며 페넌트 레이스의 혼전 속에 있다. 잘나가던 분위기에 박찬호가 복귀해 혹시라도 누를 끼친다면 구단도 본인도 낭패를 볼 수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 박찬호의 현재 상황이다. 2004년 시즌도 지지부진 속에 끝날 가능성마저 있어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