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태영의 오심 논쟁에 한국 기자단도 ‘내분’을 겪었다. 사진은 남자 체조를 취재하고 있는 사진기자들. 왼쪽은 양태영 선수. 아테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
‘언론 때문에 날아간 사격 금메달.’
그렇다. 올림픽 초반 이것만큼 화제가 된 사건도 없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대표팀 감독이 금메달 기대주의 예선탈락 원인으로 특정 방송사의 과잉취재 탓이라며 거품을 물 정도로 공공연히 떠들어댔으니 아테네 현지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이슈가 될 만했다.
일단 사건 개요는 이렇다. 아테네 현지시간으로 올림픽 첫날인 지난 14일. 한국은 4백점 만점 기록을 보유한 서선화 등이 사격 여자공기소총에서 첫 금메달을 따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한국선수들은 금메달은커녕 8명이 겨루는 결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인터뷰에서 기자들은 당연히 탈락 원인을 물었다. 그러자 변경수 사격 감독이 거의 상소리까지 동원하며 전날 특정방송사(A사)가 취재과정에서 횡포를 부린 탓이라고 폭로해 버렸다.
일단 승낙받지 못한 인터뷰를 강행했다는 점에서 과정을 떠나 취재진에게 기본적인 귀책사유가 있다.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A사측이 변 감독에게 명예훼손으로 맞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결국에는 이 인터뷰 강행이 자신들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3사 중 유독 A사만 문제가 된 것은 또 다른 사건과 연관이 있다. 이 사건에 앞서 A사의 다른 기자가 사격팀을 단독으로 취재하러 왔다가 변 감독과 크게 다퉜다. 오히려 13일보다 훨씬 더 언쟁이 심했는데 이로 인해 양측이 앙금이 남았고 변 감독은 13일 사건의 책임을 논하며 방송 3사가 아닌 A사를 주로 언급한 것이다. 또 13일 내용이 변 감독에 의해 좀 더 과장된 것도 이전 사건과의 연계성 때문이다.
▲ 여자 10m공기소총 예선탈락 직후 눈물을 훔치는 서선화 선수. | ||
당시 현장의 기자들은 두 가지의 의견으로 갈렸다. ‘제2의 오노 사건’이 될 만한 편파판정이었다는 분노론과 판정에는 문제가 없으니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국민들을 부추길 필요가 없다는 신중론이었다. 이 대목에서 맨 처음에 대두된 것은 편파 판정론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지금은 양태영의 평행봉 연기에서 스타트 밸류가 낮았다는 오심이 공식적으로 확인됐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이를 알지 못했다. 기자들이나 일반 시청자가 그 어려운 E난도 D난도의 기술이 정확히 반영됐는지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당 한국 코치도 깜박 이를 놓쳤고 나중에 비디오 분석을 통해 알았을 정도다. 단지 햄이 뜀틀에서 착지도중 구른 것에 대해 감점이 적었고, 마지막 철봉에서 한국선수들의 낮은 점수와 상대적으로 높은 햄의 점수가 편파판정의 의혹을 산 것이다. 분노론에 입각해 이를 대서특필한 언론도 처음에는 평행봉 오심이 아닌 편파 판정론을 들고 나왔다.
이에 일부 언론은 선정적인 보도로 국민감정을 호도하고 있다고 분노론을 제기한 타 언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양쪽의 앙금이 깊어질 무렵 평행봉 오심이 발견돼 편파 판정론이 승리했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던 아테네 현장 취재기자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오심과 편파판정. 사실 후자 쪽이 확실하면 금메달을 되찾는 게 쉽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나 FIG(국제체조연맹)가 심판의 단순 실수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판정번복을 하지 않고 있는 반면 편파판정은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처럼 공동 금메달을 수상한 예가 있기 때문이다.
양태영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의 빈약한 스포츠 외교력이다. 양태영이 미국선수였다면 금메달도 뺏기지 않았겠지만 이후에 편파판정으로 밀어붙여 쉽게 결론을 냈을 것이다.
또 설령 단순오심이라 해도 양태영이 금메달을 되찾을 가능성은 높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때는 미국팀이 1위를 차지했는데 당시 브라질 심판이 캐나다팀의 스코어카드 작성시 오기를 범했다. 국제수영연맹(ISF)은 당시 오류는 인정하지만 판정번복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1년여가 흐른 뒤 캐나다팀에게 추가 금메달을 인정했다. 이 건은 분명 단순오심에 해당한다. 양태영 사건과 너무 흡사한 예다.
한국선수단이 이 건을 판례로 들고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될 것 같지만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변호사 2명을 고용했다고 하는데 사건 해결은 고사하고 궁금증이나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유병철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