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예능인들은 다르다. 주어진 캐릭터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대중 앞에 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둘러싼 사건이 떠올라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면 그들의 개그를 보며 웃을 수가 없다. 웃음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예능인들의 재기가 힘든 이유다.
왼쪽부터 이수근, 노홍철, 김용만.
그렇기 때문에 지난해 하반기 나란히 복귀한 이수근, 노홍철, 김용만 등은 어렵게 복귀한 후에도 힘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논란을 딛고 다시 TV에 얼굴을 비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중이 예전과 같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고 있진 않다.
2013년 말 불법 도박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던 이수근은 2년 동안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기 전 지상파를 종횡무진하던 그는 지난해 6월 케이블채널 KBS N <죽방전설>로 조심스럽게 복귀를 시도했다. 여론이 긍정적이지 않았고, 채널 인지도가 낮은 터라 별다른 반응도 없었다.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이수근의 손을 잡아준 것은 ‘옛 동료’들이었다. <삼시세끼> <꽃보다 청춘> 시리즈로 각광받던 나영석 PD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예능프로그램인 <신서유기>를 연출하며 KBS 재직 시절 <1박2일>에서 동고동락하던 강호동, 은지원, 이승기를 다시 모으며 이수근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수근을 복귀시키기 위한 예능’이라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신서유기>가 언론과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으며 이수근의 내공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케이블과 인터넷 플랫폼 예능으로 연착륙에 성공한 이수근은 현재는 종합편성채널에서 터를 잡았다. 지난해 12월 강호동과 함께 JTBC <아는 형님>을 론칭했고, MBN <전국제패>에 이어 XTM <타임 아웃>의 MC까지 꿰차며 활동 폭을 넓혔다.
이 여세를 몰아 이수근 SBS 설 특집 예능 <사장님이 보고 있다>의 MC로 발탁되며 3년 만에 지상파 복귀를 시도한다. 파일럿 프로그램이라 정규 편성을 장담할 수 없지만 대중의 반응이 좋다면 지상파에도 다시 얼굴을 비치며 사실상 공백의 그늘을 모두 털어내게 되는 셈이다.
MBC 간판 예능프로그램으로 마니아층이 두텁기로 유명한 <무한도전>의 멤버였기 때문에 음주운전 파문이 더 컸던 노홍철 역시 지난해 하반기 복귀를 타진했다. 현재 tvN <내 방의 품격>에 출연 중이지만 그의 복귀가 성공했다고 보기는 이르다. 자숙 기간과 복귀 방법이 걸림돌로 부각됐다.
노홍철은 2014년 11월 음주운전 혐의로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후 지난해 9월 MBC 추석 특집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으로 복귀했다. <무한도전>에서 노홍철과 친분을 다졌던 PD가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그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건 발생 후 10개월 만에 복귀를 시도한 노홍철을 향해 “이르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또한 케이블이나 종편을 통해 수순을 밟지 않고 곧바로 지상파 진입을 시도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평가를 떠나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음주운전을 했지만 거리가 짧고, 사고가 발생하거나 피해자가 생기지는 않았기 때문에 노홍철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며 “만약 콘텐츠 자체가 흥미로웠다면 노홍철이 일찍 자리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노홍철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넷 콘텐츠 <길바닥쇼>를 준비 중이다. 이수근이 <신서유기>를 발판 삼은 것과 비슷한 행보다.
하지만 노홍철이 진정한 복귀는 결국 <무한도전> 재입성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의 빈자리가 느껴지던 <무한도전>은 또 다른 멤버인 정형돈까지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하며 노홍철을 원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노홍철과 <무한도전> 측 모두 “구체적 계획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노홍철이 다시 <무한도전>으로 돌아올 것이란 팬들의 기대는 여전하다. MBC 관계자는 “그렇기 되기 위해서는 노홍철이 <무한도전> 없이도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노홍철을 다시 안으려면 제작진도 적잖은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노홍철이 스스로 논란을 떨쳐내는 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그계의 신사’라 불리는 김용만은 복귀 과정은 순조로웠다. 2013년 6월 불법 도박 혐의로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후 지난해 11월 케이블채널 O tvN <쓸모있는 남자들>로 복귀할 때까지 외부 활동을 철저히 삼가고, 봉사 활동 등을 해온 그가 수긍할 만한 자숙 기간을 보냈다는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도박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 것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조성한 이유였다.
이 외에도 김용만은 MBN <오시면 좋으리>에 출연하며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데뷔 후 20년 간 별다른 잡음 한번 없이 롱런해오던 그의 스타일대로 탄탄하게 바닥부터 다지며 궤도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OCN 드라마 <동네의 영웅>으로 연기 활동을 재개한 박시후의 방송 화면 캡처.
복귀 예능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조심스럽게 대중 앞에 다시 선 스타가 한 명 있다. 배우 박시후는 지난 2013년 연예인 지망생 성폭행 혐의를 받은 후 3년 가까이 공백기를 가졌다. 당시 양측이 고소를 취하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이미 그의 이미지는 무너진 뒤였다.
그는 23일 첫 방송된 케이블채널 OCN 드라마 <동네의 영웅>으로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첫 회 시청률은 1%로 동시기에 시작된 케이블 드라마인 tvN <시그널>이 6%가 넘는 시청률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아쉽다.
아직 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영웅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와 닿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결국은 콘텐츠가 재미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거북스러워하는 반응도 있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우면 대중이 찾게 되고, 그런 과정 중 과거의 잘못은 조금씩 잊혀지게 된다”며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제 기량을 되찾는 것도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연예인들이 복귀하기 위한 덕목”이라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