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용
사실 일제 36년의 치욕은 내부자들의 협조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친일파의 문제죠. 오늘 2월 23일은 우리에게 치욕과 같은 날입니다. 정확히 112년 전인 1904년 2월 23일, 대한제국은 일제와 한일 의정서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 조약의 우리측 명의자는 다름 아닌 왕족 이지용이었습니다. 고종의 5촌 조카였던 이지용은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강점에 큰 빌미를 제공했던 셈입니다.
상황은 이랬습니다. 당시는 러일전쟁이 한창이었을 때죠. 일제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병참선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절대적으로 조선의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고종은 이러한 일제의 협조 요청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고종은 일제와 러시아 사이에 중립을 선언하며 일제를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일제는 무력을 쓰게 됩니다. 곧바로 수도 한성을 점령하게 됩니다. 일제는 앞서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에 군사기지 제공을 포함한 불평등 조약을 강요합니다. 고종와 주변 대신들은 펄펄뛰며 이에 반대 의사를 피력합니다.
일제는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중 이근택이 반대하고 이용익이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일제는 곧바로 이용익을 납치하고 한 남자에 접근을 합니다. 고종의 5촌 조카 이지용이었습니다. 이지용은 훗날 을사5적 중 한 사람이 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제는 이지용을 돈으로 매수했습니다. 1만엔을 건넸고, 이지용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기재되 이지용은 당시 조선 귀족 중 가장 부유한 삶을 영위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일의정서가 체결됩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제1조 한·일 양제국은 항구불역(恒久不易)할 친교를 보지(保持)하고 동양의 평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대한제국정부는 대일본제국정부를 확신하고 시정(施政)의 개선에 관하여 그 충고를 들을 것.
2.제2조 대일본제국정부는 대한제국의 황실을 확실한 친의(親誼)로써 안전·강녕(康寧)하게 할 것.
3.제3조 대일본제국정부는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확실히 보증할 것.
4.제4조 제3국의 침해나 혹은 내란으로 인하여 대한제국의 황실안녕과 영토보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대일본제국정부는 속히 임기응변의 필요한 조치를 행할 것이며, 그리고 대한제국정부는 대일본제국정부의 행동이 용이하도록 충분히 편의를 제공할 것. 대일본제국정부는 전항(前項)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군략상 필요한 지점을 임기수용할 수 있을 것.
5.제5조 대한제국정부와 대일본제국정부는 상호의 승인을 경유하지 아니하고 후래(後來)에 본협정의 취지에 위반할 협약은 제3국간에 정립(訂立)할 수 없을 것.
6.제6조 본협약에 관련되는 미비한 세조(細條)는 대한제국외부대신과 대일본제국대표자 사이에 임기협정할 것.
112년 전 오늘은 조국의 치욕이 시작된 날입니다. 기억해야 날입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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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 안철수 “비리․부패인사 영입은 없다”
안철수 의원은 새집 만들기에 한창입니다. 기존의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탈당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나와 이제는 ‘국민의당’이란 새집을 만들고 있습니다. 뭐 아직은 새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긴 하지만, 벌써부터 정계는 술렁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는 총선에서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얼마나 큰 바람을 불러올지를 두고 호기심 어린 시선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사는 역시 ‘국민의당’이란 새집보다는 그 집에 들어오는 인사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시 정치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포장보단 그 집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올지 내실에 대한 기대감이 앞섭니다.
물론 이제 어엿한(?) 정치인의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는 안철수 의원도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안 의원 스스로 신당 창당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산해야 할 사람과는 손을 잡지 않겠다.” “부패에 단호히 대처하겠다.”
비리․부패전력이 있는 인사와는 함께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한 셈입니다. 초창기 실제로 그랬습니다. 1월 8일 허신행 전 농림수산부 장관을 포함한 3명에 대해 과거 행적을 두고 입당을 돌연 취소했으니까요. 일부 여론은 이러한 결단에 대해 ‘너무 기준이 과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냈지만, 대다수에선 ‘그래도 뭔가 달라졌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째 이 기준이 서서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입법 로비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신학용 의원의 입당은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한 석이 아쉬운 국민의당과 안철수 의원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앞서 내보인 결단과는 뭔가 모순되는 구석이 있습니다. 과연 안 의원의 결단은 진심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