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열린 월남전 참전유공자 예우증진 촉구대회에 3만여 명의 월남전참전자회 회원들이 참석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국가의 후배들을 위해 우리는 언제든 목숨 바쳐 지킬 준비가 돼있다.” 아직도 빛나는 눈동자로, 하지만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참전 용사가 말했다.
지난 3월 2일 국회의사당 앞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월남전참전자회)의 ‘호국안보결의 및 월남전 참전유공자 예우증진 촉구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날 집회는 전국에 있는 월남전참전자회 3만여 명 회원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호소문 낭독과 임원 및 지부장들의 삭발식, 결의문 낭독 등으로 식순이 진행됐다.
이날 촉구대회는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공헌에 합당한 예우를 요구하기 위해 열렸다. 월남전참전자회는 △참전 기념일 재제정 △참전명예수당 30만 원으로 인상 △참전 유공자들에 대한 보상 특별법 제정 △고속도로 통행료 전액 감면 △수의계약법 통과 △기념 재단과 기념 센터 건립 등을 요구했다.
월남전참전자회 관계자는 “월남전 참전자의 희생을 기리고 해외파병을 기념하기 위해 9월 11일을 ‘해외 파병 용사의 날’로 정하여 기념한다는 것이 애초 발의안이었다”면서 “그러나 국회정무위 법안심사 소위원장에 의해 ‘국가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해외 파병 용사의 날을 정해 행사를 할 수 있다’고 변경, 통과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시행을 해도 되고 안해도 되게 됐다. 약속 받은 법안마저 무산돼 분노를 참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특히 월남전참전자회는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문제삼았다. 진행을 맡은 월남전참전자회 고효주 여수시지회장은 “목숨 걸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월남전참전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공헌에 합당한 예우를 줄기차게 요구했다”며 “그러나 정부의 미온적 태도로 월남전 참전 용사들은 노령과 병마로 힘겹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로 나왔다”고 외쳤다. 이어 “이역만리 월남 정글에 파병되어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대한민국을 풍요롭게 만든 월남전 참전자들을 이렇게 홀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월남전참전자회는 촉구대회 개최 배경엔 ‘한강의 기적’이 있다고 말한다. 참전 용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우들의 피와 땀으로 국가 발전에 초석을 쌓았기 때문”이다. 월남전참전자회 우용락 중앙회장은 “파병 당시 국가 총 수출액 9700만 불, 국민 1인당 GNP 100불에 불과했다”며 “월남 파병으로 인해 67억 불의 외화가 유입돼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마련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기간산업 확충으로 인해 비약적인 경제 성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면서 “월남전 참전으로 79개 건설, 운송, 용역 회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월남에 진출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진그룹이 월남전에 참여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2일 열린 월남전 참전유공자 예우증진 촉구대회에서 우용락 월남전참전자회 중앙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윤충로 교수 또한 자신의 저서 <베트남 전쟁의 한국 사회사-잊힌 전쟁, 오래된 현재>에서 “참전 군인은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전, 평화 운동과는 거리가 멀고 반공주의 발전주의 국가주의 등과 같은 보수 이데올로기와 강력한 친화력을 보여주고 있다”며 “발전주의는 60년대 초반 박정희 정권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추동됐고 양적 성장을 바탕으로 한 국가 중심적 경제발전, 이를 위한 피지배층의 통제, 동원을 정당화했다”고 밝혔다. 이어 “베트남에서 무사히 귀환한 파월군인과 그들이 들려주던 이국의 풍경, 병사 개인의 경제적 필요와 당시 사회적으로 조성됐던 ‘월남붐’은 전장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고 있었고 전장은 더 이상 사지가 아니라 가난을 탈출하는 출구로 인식됐다”고 덧붙였다.
1960년에 발발한 월남전은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에 미국이 개입한 전쟁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경제 및 군사 원조가 절실했던 시기로 당시 박정희 정부는 미국이 요청하기 전에 참전을 먼저 제안했다. 이에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 8개월 동안 32만 5517명의 국군이 파병됐다. 월남전에서 5099명이 전사하고 1만 1232명이 부상을 입는 등 참전자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후유증 또한 엄청나다. 당시 미국은 전쟁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정글 지역에 맹독성 다이옥신이 들어있는 고엽제를 뿌렸다. 고엽제에 의한 후유증으로 참전 용사들은 현재까지도 두통, 현기증과 마비 증상 등을 앓고 있으며 심한 경우 당뇨병과 폐암까지 걸렸다. 보훈처의 2016년 1월 집계에 따르면 고엽제 후유증 환자는 20만 6062명이며 고엽제로 인한 2세 환자는 86명이다. 피해자들은 병환의 정도에 따라 수당을 지급 받고 있다.
한 참전 용사는 “같은 시기의 서독 광부, 간호사와 참전 용사의 대우는 너무 다르다”면서 “자의적으로 경제를 위해 간 것과 타의로 가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고 생각한다”면서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사회적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우 회장은 “50여 년간 제대로 공훈이 규명되지 않은 채 과소평가 받거나 홀대 받고 있다”며 “오늘 촉구대회는 준비 단계다. 뜻이 관철될 때까지 각 부처에 투쟁하여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가 보훈처 관계자는 “월남전참전자회의 주된 요구사항은 ‘수의계약’이다. 수의계약은 상해가 있는 단체, 예를 들면 ‘상이 군경회’ 같은 곳만 할 수 있다. 이 사안은 다른 보훈 단체들과의 형평성을 때문에 사실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라며 “다른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검토 중에 있지만 역시 다른 보훈 단체와의 ‘형평성’이 가장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한-베 평화재단 건립추진위원회 ‘베트남 피에타’ 건립을 추진 한-베 평화재단 건립추진위원회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임옥상 화백, 이길보라 다큐멘터리 감독 등 추진위원 65명과 발기인 10명이 참여해 지난해 9월 출범했다. 이들은 월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 학살을 사과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상징물인 ‘베트남 피에타(베트남 엄마와 무명 아가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주한일본대사관 맞은편에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 작가와 김운성 작가도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다. 건립추진위원회는 올해 안에 국내와 베트남 민간 학살 지역에 ‘베트남 피에타’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모금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김서경, 김운성 작가는 지난 1월 1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정확히 사과를 요구하고 받아내야 한다. 또한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정확히 사죄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둘 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