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창진 감독(왼쪽), 농구선수 김승현 | ||
역대 최강의 전력을 갖췄다는 한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이 지난 8일 소집됐다. 12명의 대표 중 절반이 넘는 선수들이 재활 중이었고, 일부 선수들은 진단서를 들고 태릉을 찾았다. ‘해외파’인 방성윤(23·KTF)과 하승진(20·포틀랜드)은 개인 스케줄 때문에 대표팀 합류를 1주일가량 늦췄다. 하승진은 NBA측이 요구한 선수상해보험료와 왕복 항공료 문제로, 방성윤은 자체 캠프에서의 훈련 일정과 NBA 트라이아웃 때문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표팀 소집. 그러나 12명의 한국 최고 농구스타들은 태극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입었고 18일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 두 막내의 반란
한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과 대만 국가대표팀의 평가전이 열린 지난 12일 태릉선수촌 다목적 체육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한 선수가 양 손에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말고 선수들이 넘어질 때마다 코트에 묻은 땀을 닦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벤치에서도 이 선수는 작전타임을 위해 들어오는 선배들에게 음료수 병을 돌리느라 쉴 틈도 없다.
그런데 땀을 닦고 물당번이나 하는 이 선수 연봉이 자그마치 3억5천만원. 한국 농구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꼽히는 김승현(27·오리온스)이다. 어느덧 프로 5년차의 ‘간판’ 선수지만 대표팀에서는 아직도 물당번을 벗어날 수 없는 ‘막둥이’일 뿐이다.
“‘그분들’이 안계신데 승현이라도 해야죠.” 대표팀 관계자의 가시 돋친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그분들’은 방성윤과 하승진을 비꼬아서 가리키는 말. 사실 김승현은 이번 대표팀의 막내가 아니었다. 사상 최고의 전력으로 평가되는 한국판 ‘드림팀’의 주축으로 떠오른 하승진과 방성윤이 개인 스케줄 때문에 대표팀 합류를 1주일가량 늦추면서 김승현이 물당번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
방성윤은 14일 귀국 후 “컨디션 조절과 시차 적응을 위해 하루를 쉰 후 하승진과 함께 16일 대표팀에 합류하겠다”고 통보해왔다. 하승진은 한 술 더 떴다. 당초 16일 입국하기로 했던 하승진은 비행기 고장이라는 어이없는 이유를 들어 입국을 하루 늦췄다. 하승진이 입국했던 17일, 하승진의 국내 홍보 대행사는 하승진의 입국 시간(오후 4시20분)을 30여 분 앞둔 3시50분께 ‘항공 스케줄 사정으로 하승진의 입국이 8시50분으로 지연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엽기 행각을 벌였다. 참고 또 참으며 입국장에서 하승진을 기다렸던 기자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안 그래도 다혈질인 대표팀의 전창진 감독. 두 ‘막내들’의 안하무인격인 행동에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대표팀 멤버 교체도 고려하고 있다”는 선언을 했다. “부상중인 고참들까지 보수 한 푼 안 받고 대표팀에 들어와서 훈련을 하고 있는데 막내들이 이런 식으로 팀워크를 해치면 대표팀에 남겨둘 필요가 있나”는 전 감독의 분노 섞인 한마디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방성윤은 전주 KCC와의 연습경기가 있었던 지난 16일 경기도 용인 마북리 KCC 체육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까마득한 막내에게 보내는 선배들의 경고이자 하루빨리 팀에 적응해 전력에 보탬이 되라는 애정 어린 메시지였다.
▲ 방성윤(왼쪽), 하승진 | ||
# 열악한 훈련환경
대표팀에는 전담 트레이너와 주무가 없다. 선수들이 경기 전 몸을 풀 때는 강양택 코치가 직접 다리를 잡아주고 근육을 풀어준다. 소속팀 명지대에서는 어엿한 ‘감독님’인 강을준 코치는 몸소 나서 선수들의 손과 발이 돼 잔심부름을 도맡는다. 그나마 전 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소속팀 TG삼보 농구단 직원 박준석씨가 일본 전지훈련 때부터 합류해 강 코치의 부담을 덜게 됐다.
이번 대표팀에 선발된 12명의 연봉을 합치면 무려 40억2천만원에 이른다. 올 시즌 나란히 최고 연봉을 받게 된 서장훈(31·삼성)과 김주성(26·TG삼보)의 연봉이 4억2천만원. FA대박을 터뜨린 신기성(30·KTF)과 현주엽(30·LG)이 나란히 3억6천만원이다. 이밖에 김승현과 이상민(33·KCC·3억2천만원)이 3억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고, 신인 최고 연봉인 9천만원을 받는 방성윤을 제외한 전원이 2억 이상의 연봉을 챙기고 있다(하승진은 NBA 2년차 최저연봉인 64만1천7백48달러(약 6억4천만원)로 계산).
그야말로 최고 스타들이 모인 대표팀에 지원은 열악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대한농구협회는 ‘역대 최고의 전력을 지닌 대표팀을 구성해 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의 중국 격파를 재현하겠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삐걱대는 불협화음만이 울리는 대표팀을 보고 있자면 NBA 간판스타 야오밍(25·휴스턴)이 참가하는 중국의 벽은 높아만 보인다.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ABC)는 오는 9월8일부터 16일까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다. 국내 항공편이 없어 카타르항공을 이용해야하는 한국 선수단은 형평성 문제라는 핑계로 비즈니스석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 일반인도 참기 힘든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 223㎝의 하승진과 207㎝의 서장훈을 11시간 동안 ‘구겨 넣고’ 대회가 열리는 현지로 가겠다는 협회. 과연 태극마크 하나 가슴에 붙여주고 애국심을 고취시켜 선수들의 투지를 이끌어내겠다는 그들의 안이한 생각이 어느 정도의 결실을 이끌어낼 지 두고 볼 일이다.
허재원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