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호(왼쪽)와 체드 크루터. | ||
맹자(孟子) ‘공손추장구하’(公孫丑章句下)에 나오는 이 구절은 전쟁의 승패는 인화(人和)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경구를 야구 배터리의 관계에 적용하면 아마도 완벽한 비유가 될 듯하다. 스포츠 경기 중에서 야구의 투수와 포수 사이처럼 인화가 절실한 포지션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 안방마님으로 불리는 포수와 남성적 기질이 강한 투수 사이의 찰떡궁합 여부가 경기 승패의 50% 이상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중인 한국인 투수들의 경우는 어떨까. 이들 투수들과 소속팀 포수들 간의 궁합을 살펴봤다.
메이저리그를 보면 최고 투수와 그를 전담하는 포수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통산 3백17승, 탈삼진 3천40개를 기록중인 ‘제구력의 마술사’ 그레그 매덕스(39·시카고 컵스)에겐 전담 포수 헨리 브랑코(34)가 있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중인 존 스몰츠(38·애틀랜타)는 루키 포수 브라이언 매캔(23)을 자신의 전담포수로 맞이하고부터 연승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투수와 포수의 호흡은 곧바로 성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투수라는 포지션은 다른 포지션보다 특히 심리적인 상태가 경기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볼을 받고 사인을 교환하는 포수와의 궁합은 가장 중요하다. 민감한 성격의 투수일수록 안방마님과의 세밀한 호흡 일치가 그날 경기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코리안 투수의 맏형 박찬호다. 섬세한 성격 탓에 포수에 대한 낯가림이 워낙 심하다. 그래서 어떠한 포수와 배터리를 이루느냐에 따라 성적이 천차만별이다. 박찬호의 경우, 투구 동작시 릴리스포인트와 이에 따른 제구력이 경기 때마다 크게 변하기 때문에 공격형 포수보다는 안정감 있는 수비형 포수가 그의 전담포수로 붙여진다.
이는 성적으로 고스란히 나타나는데, 전성기를 구가하던 LA 다저스 시절 마이크 피아자(36·현 뉴욕 메츠)-토드 헌들리(36·전 시카고)- 폴 로두카(33·현 플로리다)로 이어지는 공격형 포수보다는 톰 프린스(41·현 미네소타 트윈스)-체드 크루터(40·은퇴) 등 투수 리드와 주자 견제 능력이 뛰어난 수비형 포수와 호흡을 맞췄을 때 훨씬 좋은 성적을 거뒀다.
▲ 서재응(왼쪽)과 라몬 카스트로 | ||
하지만 크루터와 결별 이후 박찬호의 성적은 그야말로 곤두박질쳤다. 연이은 부상 탓도 있었지만 크루터의 부재가 박찬호에게는 큰 짐이 됐다.
어렵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올 시즌은 전담 포수로부터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다행히 타선의 지원으로 승수 쌓기에는 성공했으나 볼 배합 등에는 전혀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선발투수로서는 불명예스러운 6점대 가까운 방어율을 기록하면서 불펜으로 강등됐다.
X-sports의 송재우 해설위원은 “특급투수가 되기 위해선 어떤 포수와도 훌륭한 조합을 이뤄야 한다”면서도 “현재의 박찬호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줄 확실한 전담 포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팀 내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서재응은 올 시즌 라몬 카스트로(29)와 최고의 궁합을 선보이고 있다. 서재응의 마술과 같은 컨트롤에 카스트로의 세련된 리드와 호흡 조절이 큰 플러스 요인이 됐다는 게 메이저리그 코칭스태프들의 평가다.
카스트로와 배터리를 이룬 8경기의 성적은 5승1패. 서재응의 특급투구 뒤에는 카스트로의 철저한 내조(?)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재응 스스로도 “피아자보다 카스트로가 편하다”고 인정할 정도로 궁합이 잘 맞고 있다.
▲ 김병현(왼쪽)과 대니 아도인. | ||
선배들의 특급 도우미들에 자극을 받아서일까. 김병현의 경우도, 전담포수체제를 형성중이다. 그 주인공은 대니 아도인(31)으로 김병현이 선발로 복귀한 6월 이후 19경기 중 16경기에 선발 출장해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콜로라도에는 현재 아도인 외에도 JD 르로서(25)와 토드 그린(34)이란 포수가 있긴 하다. 그러나 팀은 아도인이 언더핸드 투수 리드에 가장 적합하다고 보고 김병현의 도우미로 낙점한 상태다. 아도인은 몸에 맞는 볼의 위험을 감수하고 김병현에게 적극적인 몸쪽 승부를 유도, 고비 때마다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어 놓았다. 아도인은 지난 8월9일 플로리다전에선 결승 투런홈런으로 김병현에게 시즌 3승을 선물하는 등 타격에서도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도인은 오클라호마(텍사스 산하 트리플A) 소속이던 지난해 박찬호의 공을 받으면서 재활을 도와준 경력의 소유자. 현재 김선우의 부활에도 한몫하고 있는 그는 분명 한국인 투수들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 시즌에는 과연 또 어떤 안방마님들이 코리언 투수들과 환상 호흡을 맞출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최혁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