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핌 베어벡 코치는 대표팀에서 안주인이자 실세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 후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팀을 이끌어온 데는 선수단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베어벡 코치의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 ||
아드보카트 감독과 본프레레 감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아드보카트 감독의 행운은 바로 핌 베어벡 대표팀 수석코치(49)다. 핌 베어벡 코치가 있어 아드보카트 감독은 따로 선수 파악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최근 김남일은 “만약 본프레레 감독에게도 베어벡 코치가 있었다면 결과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2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모든 영광의 중심에 섰다면 핌 베어벡 코치는 묵묵히 뒤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던 2인자 역할에 충실했다. 별로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핌 베어벡 코치를 알아갈수록 독일월드컵 16강 진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베어벡 코치에 대해 알아본다.
히딩크 감독과 핌 베어벡 코치는 같은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원래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히딩크 감독이 2002월드컵을 위해 한국에 부임하고 난 뒤 네덜란드 축구협회에서 베어벡 코치를 추천해 히딩크 사단에 합류했다.
▲ 아드보카트호 감독(왼쪽)과 핌 베이벡 | ||
아시아 축구와 인연이 있었던 베어벡 코치는 히딩크 감독을 도와 2002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고 에인트호벤 2군 감독으로 적을 옮길 때 태극전사들에 대한 정보가 담긴 자신만의 파일도 가져갔다. 언젠가는 활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쿠엘류 감독, 본프레레 감독을 거치면서도 베어벡 코치를 감독 후보로 생각하는 한국 축구계 인사는 없었다. 베어벡 코치의 한국내 에이전트는 K리그 감독으로까지 핌을 추천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대표팀 감독 후보에도 들지 못할 때는 한국축구의 경직성을 성토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본프레레 감독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서도 퇴출당한 후 베어벡 코치는 아드보카트 감독과 함께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된다. 베어벡 코치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자신의 파일을 꺼내보였고 아드보카트 감독은 선수들의 숨겨져 있던 투지를 되살리며 꺼져가던 한국축구에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베어벡 코치는 타고난 참모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베어벡 코치는 철저하게 아드보카트의 말 한마디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 감독과 베어벡 코치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있었던 일화다.
▲ 지난해 11월 스웨덴과의 친선경기에서 핌 베어벡 코치가 홍명보 코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
베어벡 코치의 치밀함은 그의 노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히딩크 밑에서 코치생활을 함께 했던 정해성 부천 감독은 “히딩크의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은 사실 베어벡 코치의 노트에서 상당 부분 나온 것”이라면서 “선발 출전 선수명단을 히딩크 감독이 짠다면 교체선수는 베어벡 코치가 많이 관여했다”고 밝혔다.
베어벡 코치의 선수파악 능력에 대해 히딩크 감독도 인정했다는 얘기다. 이는 아드보카트 감독 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히딩크 감독과 아드보카트 감독이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어 가능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2005년 10월12일 이란전에서 전반 3-4-3 포메이션으로 나섰다가 하프타임에 코칭스태프의 의견을 듣고 후반 4-3-3으로 포메이션을 변경했다. 감독이 권위주의를 버리고 코치를 신뢰하는 대표팀 코치진의 합리성은 베어벡 코치에게는 큰 행운이다.
베어벡 코치는 대표팀 내의 살림꾼이며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를 구사하는 학구파로 언제나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차분하고 유순하면서 대표팀 스태프, 선수들과도 잘 어울리며 자칫 멀어질 수 있는 아드보카트 감독과 선수단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베어벡 코치가 2002년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한국을 16강 이상으로 이끌 수 있을지 그 결과가 궁금할 따름이다.
변현명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