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반 니스텔루이(왼쪽)와 독일 발락. 독일과 네덜란드는 지금까지 팽팽한 접전을 치러왔다. 연합뉴스 | ||
우선 세계 축구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70년대 토털사커의 혁명, 그 진원지가 바로 네덜란드였다. 기록으로 보아 독일이 네덜란드보다는 훨씬 앞서는 것이 분명하지만 20세기 말 UEFA(유럽축구연맹)는 베켄바우어를 밀어내고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를 ‘European Player of the Century’에 선정했다. 거기다 네덜란드는 일단 월드컵이나 유럽컵에 나오면 늘 4강 후보에 빠짐없이 들었고 이번 대회에서도 예외없이 ‘네덜란드는 독일에서 메이저 대회를 개최할 때마다 좋은 성적을 냈다’라는 객관적 통계를 통해 개최국 독일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작년 조 편성시 베켄바우어 조직위원장이 ‘네덜란드와 한 조가 아니라서 안심이다’고 했을까.
이 두 나라의 그간 숙명적 대결을 잠깐 돌이켜 보자. 지금까지 두 나라는 월드컵에서 세 번 붙었다. 74년 대회 결승에선 서독(독일)의 2 대 1 우승, 78년 대회 2차 리그에선 2 대 2 무승부, 90년 대회 16강전은 서독의 2 대 1 승. 유럽컵에서도 역시 3번 맞붙었는데 88년 준결승에선 2 대 1로 네덜란드가 승리했고 92년 조별 예선전은 3 대 1로 역시 네덜란드가 우위를 점했다. 유로2004 조 예선에선 1 대 1 무승부를 기록했다.
두 나라는 두 대회에서 분명한 두각을 나타내면서도 서로의 세력권을 갈랐다. 한데 두 나라는 각 대회 중요 경기 때마다 2 대 1이라는 공통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이 또한 아이러니의 하나다. 이와 같은 통계처럼 전 유럽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우수한 경기력을 보유했던 국가는 이탈리아나 잉글랜드가 아닌 독일과 네덜란드라는 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거의 이견이 없다. 스페인을 위시한 여타 미들파워 국가들은 기복이 심해 네덜란드 이상의 기록이나 전력을 갖고 있더라도 오렌지 군단만큼 인정을 받지 못했다.
▲ 클린스만(왼쪽), 반 바스텐 | ||
두 팀 모두 74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하여 대략 2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4번째 세대(4th generation)’들로 분류되고 있는 것도 흡사하다. 두 팀 다 현재론 수비가 견고하지 못한 공통의 결함을 갖고 있으며 중앙 미드필드는 발락을 보유한 독일이, 공격진은 반 니스텔루이와 아르옌 로벤을 포진한 네덜란드가 도면상으로는 우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이 주로 수비를 두텁게 한 다음 공격으로 느슨하게 전환하는데 비해 네덜란드는 짧은 패스와 2 대 1 패스에 의한 빠른 공간침투, 다이내믹한 측면 돌파에 의해 경기 전체를 지배하려는 공격적 스타일을 구사한다. 물론 클린스만은 매우 공격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 94년 브라질과 이탈리아처럼 일방적인 창과 방패의 대결이 되지는 않을 것이며 중앙 미드필드의 자리 싸움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가 승패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이 두 팀의 격돌은 축구 전술의 세밀한 비교를 가능케 하는 훌륭한 학습의 장이 된다.
포메이션 역시 독일이 4-4-2(때로는 토르스텐 프링스가 중앙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는 4-1-3-2), 네덜란드가 4-3-3을 기본으로 쓴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특히 두 팀 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 명으로 포진하는 더블 볼란치를 통해 가운데를 두껍게 축성할 수도 있고 공격형 미드필더(독일은 발락, 네덜란드는 반 데 바르트) 중심으로 상향하는 전진 수비 형태를 나타낼 수도 있는 등 경우에 따라서 어떤 전술 형태를 구사할 건지 매우 흥미로운 측면이 많다.
그게 아니라면 서로를 너무 잘 안 나머지 아웃 복싱으로 일관하여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클린스만이나 반 바스텐의 성향으로 보아 그런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표를 산 관중들은 최소한 입장권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 것이다.
모든 게 그렇지만 축구는 경쟁을 통해 더욱 강해진다. 호주가 오세아니아에서 왕 노릇을 해봐야 전 세계적으로는 역시 우물 안 개구리이며 80~90년대 아프리카 축구를 주름잡았던 카메룬도 나이지리아라는 강호가 등장함으로써 더욱 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 최우수 선수상을 3년 연속 제패하는 거물 사무엘 에토를 낳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 역시 라이벌인 이웃 일본이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는 데 굳이 가슴 아파할 이유는 없다. 독도는 독도고 축구는 축구이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대표팀 미디어 담당관
현 독일대사관 참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