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맞붙은 스위스의 센데로스(왼쪽)와 프랑스의 앙리. 오른쪽은 아데바요르. 로이터/뉴시스 AP/연합뉴스 | ||
각 리그의 클럽에 소속된 스타 선수들은 국적도 다르고 개성 또한 천차만별이지만 경기 때는 팀을 위해 마치 한 형제처럼 ‘똘똘’ 뭉친다.
그러나 이들도 4년에 한 번씩은 서로 적이 되어 만난다. 각자 조국의 부름을 받고 출전하는 월드컵 때문이다. 이번 독일 월드컵도 예외는 아니다. 월드컵 조별 예선부터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맞서 싸우고 있는 팀 메이트들을 모아봤다.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첼시 그리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AC밀란 유벤튜스 등 명문 팀은 다국적 팀이라고 불리는 만큼 소속 선수들 거의 전부가 월드컵 기간에는 동료가 아니라 적으로 갈라서 있다.
우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인세(아르헨티나), 판 니스텔로이, 판데르 사르(이상 네덜란드) 등 팀 내 비(非) 잉글랜드 파 동료들이 예선 C조에서 피할 수 없는 대결을 펼치고 있다. 올 시즌 막판 맨유에 입단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비디치는 부상으로 벤치에서 동료들의 활약을 지켜봐야 한다.
G조도 마찬가지. 05-06시즌 막판 맨유 공격진에 활기를 불어 넣었던 프랑스의 루이 사아, 그리고 수비수인 실베스트르도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동료 한국의 박지성과 맞닥뜨렸다.
2년 연속 프리미어리그 왕좌를 거머쥔 첼시의 공격 삼각 편대인 네덜란드 로번, 아르헨티나 크레스포, 코트디부아르 드로그바가 공교롭게도 조별 예선부터 서로의 골문을 향해 득점포를 날려야 할 처지다. 이미 세 선수 모두 골을 작렬시켰다.
첼시의 중원 지휘자인 가나의 에시엔도 소속팀 주전 골키퍼로 같은 E조로 편성된 체코 페트르 체흐에게 시즌 때처럼 박수를 보낼 처지가 아니다. 첫 경기 이탈리아 전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에시엔은 이제 동료 골키퍼에게 무차별 슈팅을 날려야 하는 냉혹한 승부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아스널 소속 선수들도 조별 예선부터 동료들과의 대결 구도에 머리가 복잡하다. 워낙 서로가 스타일이나 장단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경기장에서 뛰는 자체만으로 부담스럽다.
B조 스웨덴의 저돌적 미드필더 융베리는 20일 잉글랜드의 애슐리 콜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특히 ‘주무대’가 오른쪽인 융베리와 왼쪽 측면을 방어하는 애슐리 콜은 포지션 상 수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의 왼쪽 공격수인 판 페르시와 코트디부아르의 센터백 콜로 투레도 지난 16일 경기에서 서로가 동료라는 것을 잊고 맞붙었다.
G조 역시 ‘아스널맨’들이 잠시나마 소속팀을 잊고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미 프랑스의 앙리는 아끼는 소속팀 후배인 스위스의 영건 센데로스와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스위스의 쿤 감독은 의도적으로 앙리와 센데로스를 ‘매치업’시켰고, 앙리의 습관까지 훤하게 꿰차는 센데로스는 90분 내내 앙리를 무력화시켰다. 센데로스는 소속팀에서 앙리와 투톱을 이루는 아데바요르와 또 다시 일전을 벌여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스타들이 즐비한 이탈리아 AC밀란, 유벤투스의 주축 선수들도 월드컵 조별 예선부터 그다지 내키지 않는 대결을 벌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AC밀란 소속 체코의 왼쪽 윙백 얀쿨로프스키는 한솥밥을 먹고 있는 이탈리아의 질라르디노와 가투소, 피를로와 조 1위를 놓고 22일 일전을 벌인다. 브라질의 카카는 동료인 크로아티아 시미치의 눈앞에서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뜨렸다.
유벤투스의 천재 미드필더 체코의 네드베트 역시 소속팀 동료인 이탈리아 카모라네시 - 참브로타 - 칸나바로의 저지선은 물론, 골키퍼 부폰의 빈틈까지 뚫어야한다.
이탈리아 피오렌티나의 수비수 우이팔루시(체코)도 동료인 이탈리아의 루카 토니가 공격수로 교체되어 경기에 나올 경우 그를 막기 위해 두 눈을 더 크게 떠야 할 처지다.
가나의 쿠포어는 AS로마 동료인 이탈리아의 토티와 한판 대결을 펼쳤다. 쿠포어와 토티의 대결에서는 쿠포어의 활약이 돋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이아퀸타(우디네세) 앞에서 실수를 범해 골을 헌납하고 분루를 삼켰다. 이아퀸타의 쐐기 골은 팀 동료였던 가나의 미들필더 문타리의 다리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이밖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찰떡궁합의 호흡을 연출하며 팀을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주역인 포르투갈의 데쿠와 멕시코의 마르케스도 21일 한치의 양보 없는 중원 싸움을 벌여야 한다.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하는 가나의 아피아와 미국전에서 두 골을 터뜨린 체코의 로시츠키 역시 같은 포지션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맞선 동료 사이.
PSV 에인트호번 동료인 코트디부아르의 아루나 코네와 네덜란드 중원의 핵 필립 코퀴와 센터백 오이여르도 피할 수 없는 적으로 만났으며, 독일 레버쿠젠에서 함께 활약하는 독일의 슈나이더와 폴란드의 크시누베크도 서로가 동료라는 생각을 잠시 잊어야 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