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전 패배 직후 눈물을 흘리는 이천수. 연합뉴스 | ||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지치고 힘들 때 절 많이 채찍질하면서 운동장으로 내몰았어요.
스위스전. 너무나 이기고 싶었습니다. 전 16강에 나갈 거라고 믿었어요. 확신도 있었구요. 스위스가 아무리 강팀이라고 해도 우리가 무조건 ‘들이대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축구의 벽이 정말 높았어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도 실감했습니다. 이천수의 한계도 절감했구요. 그동안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우리만의 리그’에서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이며 자꾸 눈높이를 낮춰갔던 것도 사실이었죠.
절 싫어하는 많은 분들이 ‘혀천수’ ‘혀컴’이라고 뭐라 하시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한때 이천수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전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니 독일 월드컵 이후 더 달라질 것입니다. 이번 대회가 저에게 너무나 많은 공부와 깨달음을 안겨줬거든요. 프리킥의 기술, 스피드 있는 돌파, 한 발짝 빠른 슈팅 등 앞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병역 면제 혜택을 간절히 소원했던 후배들에게 정말 너무 너무 미안합니다. 어쩜 제가 흘린 눈물이 그들의 절망스런 표정으로 인해 더 강한 울림을 전했는지도 모릅니다. 운동선수에게 병역 혜택이 얼마나 대단한 선물이란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저 또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장에서 쓰러질 각오로 열심히 뛰었거든요. 후배들에게 값진 ‘선물’을 주고 싶어서였죠.
잊을 수 없는 후배가 있습니다. 저랑 같은 방 썼던 이호예요. 후배라고 잔심부름 도맡아 하면서도 싫은 내색 없이 절 많이 도와줬습니다. 경기 전날 컨디션 조절해 준다고 마음 써준 부분도 정말 고맙습니다. 월드컵 이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걸 갖고 가는 선수라 큰 성공을 거둘 거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한국대표팀을 응원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에서, 여기 경기장에서 ‘대한민국’을 외친 응원 덕분에 저희가 갈수록 좋은 경기 보여 드릴 수 있었어요. 그 응원이 K-리그 경기장에도 똑같이 울려 퍼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마음의 눈물까지 깨끗이 닦고 다시 출발선상에 서겠습니다.
하노버에서 이천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