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람’은 가장 점잖은 호칭이었다. 사기꾼, 빌어먹을 인도인, 재수 없는 년…. ‘시즌 5’의 몇몇 참가자들이 쉴파 셰티에게 퍼부은 명칭은 욕설에 가까웠고, 이것이 여과 없이 방송되자 영국 사회는 들끓기 시작했다. 방송사 홈페이지엔 3000개에 달하는 항의 글이 달렸고, 영국의 방송통신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 오프컴엔 4만 건이 넘는 항의가 쇄도했다.
‘연예인 빅 브라더’에서 인종 차별을 받은 인도 여배우 쉴파 셰티.
여성 참가자들 사이의 경쟁의식일 뿐이라고 둘러댔던 ‘채널 4’는 결국 제이드 구디(방송인), 대니엘 로이드(모델), 조 오미에라(가수) 등 세 명의 영국 여성과 쉴파 셰티 사이에 문화적 충돌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채널 4’는 인종 차별의 소지가 있는 대목을 편집 없이 계속 방영했다. 하우스메이트 사이의 역동성은 <연예인 빅 브라더>라는 프로그램의 일부이며, 시청자는 그것을 볼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기울었다. 저널은 들끓었다. 처음엔 영국에서 300개 정도의 기사가 쏟아졌지만 이후 전세계에서 4000개에 달하는 기사들이 <연예인 빅 브라더>의 인종 차별에 대해 다루었다.
급기야 정치 문제로 비화됐다. 하원의원 케이스 바즈는 의회에서 문제 제기를 했고, 토니 블레어 수상은 쇼를 보지 않았다며 노코멘트를 했지만 “어떤 이유든 인종 차별에 대해선 반대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런던 시장인 켄 리빙스턴은 “셰티에 대한 차별과 따돌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악마의 편집’을 한 제작진을 비난한 뒤, ‘채널 4’는 이 프로그램으로 벌어들이는 모든 수익을 인종 문제 관련 단체에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경찰 조사가 이뤄졌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쉴파 셰티는 참가자 중 한 명인 중견 코미디언 클레오 로스코에게 “제이드, 조, 대니엘과 논쟁하는 것이 두렵다. 아무래도 그들은 내가 인도 사람이라서 공격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는 것. 경찰은 1986년에 만들어진 치안 유지법의 ‘인종 증오’ 항목에 해당하는지 살폈고, 피해자인 셰티는 “그들이 인종주의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외교 문제로 번지기도 했다. 인도에선 거리 시위가 이어졌고, ‘채널 4’ 사장인 배니 트레비스 인형을 만들어 화형식을 했다. 관광청에선 셰티에 대한 공격의 주동자인 제이드 구디를 초청해 직접 인도 문화를 경험케 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가장 심각한 타격은 광고주들의 이탈이었다. 카폰 웨어하우스의 찰스 던스턴 회장은 광고를 끊으면서 인종 차별 반대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후 뷰티박스닷컴, 자미야 아로마세라피, 유나이티드 비스킷, 코브라 비어 등이 빠져나갔다. 제이드 구디가 모델인 향수는 매장 선반에서 사라졌고, 그녀의 자서전을 출간했던 하퍼스콜린스는 페이퍼백 발행 계획을 백지화했다. 당시 구디는 학교 내 왕따를 반대하는 시민 단체의 일원이었는데, 그녀가 셰티를 왕따시키는 사건이 일어나자 단체는 홈페이지에서 구디의 모든 흔적을 지웠다.
한편 구디와 프로그램을 계획했던 리빙TV도 발을 뺐다. 제이드 구디만 곤경에 처한 건 아니었다. 구디와 한편이 되어 셰티를 괴롭혔던 대니엘 로이드는 보험 회사와 의류 광고가 날아가 수십 만 파운드의 손해를 입었다. 결국 ‘채널 4’의 배니 트레비스 사장은 방송사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주는 <연예인 빅 브라더>의 폐지까지 결심했고, 실제로 쇼는 1년 동안 쉰 후에 2009년에 ‘시즌 6’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후 언론사들의 취재로 가혹 행위가 더 있었음이 밝혀졌다. 구디와 로이드와 오미에라는 셰티를 비웃는 시를 짓기도 했던 것. ‘봄베이에서 온 여자가 있었네’로 시작하는 시는 ‘우리 집은 행복했네. 그 재수 없는 인도 년이 오기 전까지는’으로 끝나는 시였다. 결국 가해자들은 사과해야 했다. 주동자인 제이드 구디는 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셰티는 모두를 용서한다고 이야기했지만,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셰티를 괴롭혔던 3인방은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고, 로이드는 인종주의자로 몰리면서 신경쇠약에 걸려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쉴파 셰티를 주도적으로 괴롭힌 제이드 구디(왼쪽)는 ‘연예인 빅 브라더’ 출연 2년 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른쪽은 쉴파 셰티.
시간은 흘렀고, 1년 뒤인 2008년 8월 인도에서 제작된 프랜차이즈 프로그램 <빅 브라더, 빅 보스>에 제이드 구디가 출연했다. 쇼의 호스트는 다름 아닌 쉴파 셰티. 두 사람은 감격적인 재회의 포옹을 하며, 과거의 일을 씻었다. 그런데, 슬픈 일이 일어났다. 촬영 기간에 제이든 구디가 암 판정을 받은 것. 결국 그녀는 다음 해인 2009년 3월에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두 아이가 있었고, 남편인 잭 트위드는 22세였다. 그녀가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혹시 2년 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로 겪었던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이어졌다.
이후 한동안 <연예인 빅 브라더>에서 인종 차별적인 상황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2013년 ‘시즌 12’에서 참가자인 토크쇼 진행자 캐롤 맥기핀이 ‘깜둥이’(nigger)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경고를 받았다. 어떤 대상을 향해 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 쇼에선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그릇된 표현’이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