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년째 대표팀의 건강을 챙겨온 최주영 의무팀장. 월드컵 동안 워낙 부상자가 많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2006독일월드컵 축구대표팀의 의무 팀장으로 활약했던 최주영 씨. 조별 예선전을 치르는 3게임 동안 최 팀장은 격무에 시달린 나머지 탈진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간단히 링거만 꽂고 마지막까지 선수들을 돌보아야만 했다. 유럽에서 치르는 월드컵인 데다 유난히 부상 선수가 속출해 노심초사, 강행군의 연속이었던 것.
대표팀 선수들과 가장 밀착된 생활을 하며 선수들의 몸 상태와 컨디션 조절을 담당한 최 팀장은 한 달여 전에 치른 월드컵이 마치 1년은 더 된 듯한 느낌이라고 한다. 최 팀장이 떠올리는 2006독일월드컵은 한 마디로 ‘환자들로 치른 월드컵’이었다.
# 독일 문전서 감기비상령
독일 월드컵을 향한 마지막 관문, 스코틀랜드 전지훈련은 선수들은 물론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기대를 모았던 스케줄이었다. 독일 입성 전 마지막으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 그러나 인천공항을 출발해 스코틀랜드에 들어서는 순간 최주영 팀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날씨인 데다가 기온이 뚝 떨어져 감기 걸리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 숙소에 도착한 선수 전원에게 처음으로 감기 비상령을 내리고 다양한 주의 사항을 제시하는 등 부산을 떨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도착 후 이틀 동안은 ‘왜 이런 곳으로 전지훈련을 왔을까’하는 의문이 일었을 정도였다고.
# 박지성 발목 또 비끗
박지성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입은 오른쪽 발목 부상으로 몸 고생, 마음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국에서 90% 정도 회복시켜 놓은 뒤 스코틀랜드로 향했다는 것. 그런데 아뿔사! 연습 경기 도중 이영표와 부딪히는 바람에 이번엔 왼쪽 발목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살펴보니까 왼쪽 발목이었다. 오른쪽도 완쾌된 게 아니라 상당히 심각했다. 정상 훈련해서 컨디션을 끌어 올려야 하는 선수가 양쪽 발목을 다 다쳐 또 재활을 해야 하니 정말 난감했다. 지성이 발목을 치료하면서 신에게 기도했다. 지성이가 빠진 경기를 상상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발목에 테이핑을 하고 뛰었는데 워낙 테이핑하는 걸 싫어하는 탓에 세게 압박을 하지 못해 힘들었다. 최 팀장은 토고전에서 박지성이 경기장을 뛰어다니는데 마치 운동장이 아닌 살얼음판을 뛰는 것처럼 보였다고.
# 김남일 “내 허리가…”
김남일도 월드컵 직전 허리 부상으로 정상 훈련에 합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수가 실의에 빠졌다. 소속팀에서도 정상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터라 그 상실감은 더더욱 컸다. 최 팀장은 김남일에게 이렇게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남일아, 며칠이면 끝나. 내가 고쳐놓을 테니까 포기하지마. 알았지?”
대표팀의 주요 선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하자 최 팀장도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런데 이번엔 이천수가 감기에다 편도선염이 부어서 끙끙 앓고 있었다.
# 이천수 고열에 신음
“열까지 나서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믿었던 천수까지 아프니까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보이더라. (송)종국이는 뛰었다하면 여기저기 잔 부상을 당하고 들어와 많이 힘들어 했다. 월드컵 직전의 치료실은 마치 종합병원을 방불케 했다. 그 상태의 선수들로 어떻게 월드컵을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 돼 잠이 안 올 정도였다.”
월드컵 대회 중에도 부상은 빈번했다. 프랑스전에서 이호가 비에라와 부딪혀 경기 도중 혼절했던 일이 발생했다. 최 팀장은 이호가 뇌진탕 증세를 보여 교체 사인을 보냈다고 한다.
“이호는 계속해서 뛸 수 있는데 왜 빼냐면서 괜찮다고 주장했다. 순간 날 원망했겠지만 뇌진탕 증세를 보이는 선수를 무리해서 뛰게 할 수는 없었다.”
# 안타까웠던 선수들
최 팀장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바로 이을용과 안정환이다. 두 선수는 이적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했다. 그런데 막판에 감독의 눈을 사로잡지 못했던 것.
“이을용은 몸 상태나 컨디션이 좋았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그 선수의 상태가 좋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선수 기용은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안정환도 90분을 소화할 만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메디컬 측면에서 본다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만 말하겠다.”
최 팀장은 98년 프랑스월드컵 때는 이임생이, 2002년 월드컵 때는 황선홍이, 그리고 이번 독일월드컵에선 최진철이 부상으로 피를 흘리는 현장에 있었다. 최 팀장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때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 대회가 되길 바란다”는 희망 사항을 전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