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마법사 간달프 같다는 의미로 팬들은 김인식 한화 감독에게 ‘한국 프로야구의 간달프’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오른쪽은 <반지의 제왕> 포스터와 김 감독을 합성한 사진. 사진합성=장영석 기자 | ||
최근 한국시리즈 도중에는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도라에몽’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경기 전에는 도통 입맛이 없어서 단팥빵 3개를 준비해 놨다가 경기 중에 조금씩 먹는다는 보도가 나간 뒤였다. 20년 전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일본 만화 <도라에몽(한국에는 ‘동짜몽’이란 제목으로 소개됐음)>에서 빵을 좋아하던 주인공 캐릭터의 모습과 닮아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인식 감독을 대하는 팬들의 반응 속에는 대체로 ‘친근해 보이고 유머러스한 감독’이라는 분위기가 풍긴다. 실제 김인식 감독은 8개 구단 사령탑 가운데 늘 재미있는 농담과 표현을 잘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프로야구의 간달프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선 주인공을 도와주는 백발의 마법사 간달프가 등장한다. 간달프는 1탄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가 2탄에서 다시 등장해 프로도를 비롯한 주인공 일행의 앞길을 알게 모르게 돕는 역할을 한다. 악의 축에 선 마법사 사루만과 맞서는 멋진 캐릭터였다.
지난 3월 한국 야구대표팀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 미국 멕시코를 잇달아 격파하고 4강 신화를 달성하자 팬들은 김인식 감독에게 ‘한국프로야구의 간달프’란 칭호를 붙였다.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던 목표를 달성하고 야구 종주국 미국과 한국을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일본을 상대로 한국프로야구의 내적인 힘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김인식 감독이 대표팀 지휘부에 있을 때마다 한국팀은 좋은 성적을 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코치로 참가했을 땐 대표팀이 사상 최초로 동메달의 쾌거를 이뤄냈다. 당시 미국과의 준결승에서 심판진의 억지 판정만 아니었다면 결승에 올라 쿠바와 금메달을 다툴 수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시드니올림픽 때 미국 감독이었던 토미 라소다가 훗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LA 다저스에서의 감독 생활이 아니라 시드니 올림픽이었다”고 말했을까.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땐 감독으로 팀을 이끌고 금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올초 WBC의 놀라운 성공까지…. 김인식 감독의 능력은 단연 돋보였다.
▲ 2001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뒤 헹가래를 받는 김인식 감독. | ||
두산 사령탑 시절부터 김인식 감독이 결혼을 앞둔 1.5군 선수들을 가끔씩 일부러 선발라인업에 포함시켜 출전시켜준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부 쪽에서 보면 명색이 프로야구 선수와 결혼하는데 아무리 봐도 경기에 나오지 않으면 난처하잖아. 한 번씩 경기에 나가서 얼굴 비추면 신부 쪽에서 얼마나 기쁘게 생각하겠어. 신랑 체면도 서고 말야.”
이보다는 평소 정규 시즌 때 김 감독의 선수 기용 내용을 들여다보는 게 그가 어떤 감독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프로야구 1군 선수단의 규모는 26명이다. 정규시즌 동안에는 대개 11~12명의 투수진을 운용하고 그밖에 지명타자를 포함해 선발라인업 9명을 짜면 결국 20~21명의 선수들은 어떤 형태로든 정기적인 출전이 가능한 선수들이다. 나머지 5~6명이 항상 문제다.
김인식 감독은 이들 5~6명에게 신경을 많이 쓴다. 되도록 골고루 출전 기회를 주면서 불만이 쌓이지 않도록 한다. 그러다보니 김인식 감독이 맡은 팀에선 감독의 선수 기용 문제로 인한 불협화음이 거의 없다. 도무지 출전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한 타자가 선발 라인업에 포함됐다. 경기 전 궁금해서 김인식 감독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뻔하다. “걔도 가족이 있잖아, 먹고 살아야지.”
▶▶믿음 속의 치밀함
김인식 감독에게선 항상 ‘덕장(德將)’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김 감독이 펼치는 야구를 ‘믿음의 야구’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산 사령탑이었던 2001년 한국시리즈 때 맞상대인 삼성 김응용 감독과 비교되면서 ‘믿음의 야구’ 이미지가 확고하게 굳었다. 눈앞의 성적 보다는 믿음을 갖고 기다려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복장(福將)’이란 얘기도 듣는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약간의 운이 따라준 것도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프로야구 현장에서 지켜봐온 김인식 감독은 실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지장(智將)’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최근 부진에 빠진 투수가 불펜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치자. 가뜩이나 몇 차례 게임을 망쳤기 때문에 그 투수는 감독과 동료들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상태다. 지나가던 김 감독이 그 투수를 향해 “어~이, 공 죽이는데, 박찬호가 와도 상대가 안 되겠어”라며 툭 던지고는 사라진다. 훈련을 하던 투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감독의 칭찬에 힘을 얻게 된다. 다음 등판 때 강한 상대와 맞붙었는데도 예상 밖 호투로 승리를 따낸다. 실제 이런 경우가 꽤 있었다.
▶▶뇌졸중 아니라 뇌경색이야
뇌졸중과 뇌경색. 의학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혼용해서 마구 쓰는 단어들이지만 당사자들에겐 엄청난 차이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김인식 감독은 최근 삼성과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도중에 “내가 왜 뇌졸중이야, 뇌경색이지”라며 피식 웃음을 보였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 2004년 말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각고의 재활 노력 끝에 지금은 많이 회복돼있는 상태. 아직도 움직임이 조금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어쨌건 뇌경색을 앓은 뒤 담배와 술을 끊고 식초에 절인 검은 콩, 청국장 등 건강식에 푹 빠져 있다.
그런데 가끔 언론을 통해서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 감독’이란 표현이 나올 때마다 김 감독은 “뇌졸중과 뇌경색이 얼마나 다른 건데”라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뇌졸중은 혈관이 파열되는 것이고, 뇌경색은 혈관이 막히는 것이다. 김 감독은 자신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