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 대표는 지난 6일 오전, 국회에서 특별 기자 회견문을 발표했다. 그는 “광주의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삼성 미래차 산업 광주 유치’를 중앙당 차원의 공약으로 승격하고 총력 지원하겠다”며 “삼성 전장사업 핵심사업부를 광주에 유치하면, 5년간 2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민주 중앙당 차원에서 삼성 공장을 광주시에 유치하겠다는 총선 공약을 제시한 것이다. 김 대표는 “우리 양향자 후보가 삼성 쪽과 사전에 협의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야당 대표의 공약 발표는 특별한 행보가 아니다. 하지만 뜻밖의 지점에서 폭탄의 뇌관이 터졌다. 김 대표가 공약을 발표하자마자, 삼성전자가 “구체적인 추진방안과 투자계획을 검토한 바 없다”며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더민주의 핵심공약을 해당 대기업이 정면으로 반박하는 모양새가 펼쳐진 것.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부정하는 듯한 삼성전자의 입장 때문에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 지킬 수 없는 공약을 성급히 제시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는 이튿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상의돼서 오면 공약이 아니다. 못 하면 지키도록 노력하겠다는 거다”며 “우리 양향자 후보가 삼성 상무 출신 아니냐. 자기네 사람들이 여기저기 정보도 접해보고 그렇지 않았겠나”고 밝혔다. 김 대표 스스로 중앙당 차원에서 삼성 측과 기본적인 합의조차 않고 공약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에둘러 인정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자동차 전장 산업은 자동차에서 전기가 흐르는 부품을 생산하는 사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경 박종환 부사장을 중심으로 전장사업팀을 신설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완성차가 아닌 자동차에 들어갈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사업이다. 자꾸 시장이 커지니까 체계적으로 해보자고 팀을 꾸렸다”며 “이제 막 그림을 그리는 단계다. 그런데 정치권 때문에 어마어마한 사업처럼 부풀려졌다. 공장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는 거의 마지막 수순인데 그쪽에서 이 부분을 검토했다고 한다. 사실 말이 안 되는 내용이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김 대표 말대로 양향자 더민주 후보(광주서구을)가 삼성전자와 물밑 ‘합의’를 거친 것은 아닐까. 본래 ‘삼성 미래차 산업 광주 유치’ 공약은 양 후보의 지역공약이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으로 더민주에 영입된 양 후보는 지난 3월 29일 ‘미래자동차 투자유치 3조, 2만 개 일자리 창출’ 공약을 발표했다. 동시에 그는 “삼성의 전장사업 핵심 사업부를 광주에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의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약은 그분의 공약일 뿐이다. 정치인들 사이에 우리가 끼는 건 사실 맞지도 않다. 엉뚱하게 이슈를 끌고 왔다”고 반박했다.
양 후보 측도 김 대표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양 후보 측근은 “삼성전자는 전장사업 확대를 위해 사업성을 검토하고 있고 담당부서를 설치한 상태다”며 “양 후보는 삼성이 검토 중인 전장사업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중앙당에선 양 후보 공약이 이행되도록 파격적인 인센티브안을 제시했다. 어떤 문제가 있나”고 말했다. 사전에 합의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총선 공약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양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천정배 국민의당 후보(광주서구을) 측 주장은 다르다. 천 의원의 측근은 “삼성에선 검토한 바 없다고 하고 양 후보와 김 대표는 하겠다고 하는데 뭔가 좀 안 맞는 듯한 느낌이다”며 “새만금에도 삼성이 투자하겠다고 몇 년 전까지 약속까지 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투자를 안 하고 있다. 그런 공약은 마음으로야 다 할 수 있다. 유권자들이 현명히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재 더민주가 처한 속사정과 연관을 짓는다. 호남 민심이 심상치 않자 김 대표가 미완의 공약을 내걸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전계완 정치 평론가는 “이 공약은 무리수가 맞다. 김 대표가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해놓고선 광주에서 재벌 대기업의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행위 당사자 측면에서 무리수를 두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호남 지지율이 치솟는 것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유권자 측면에서 보면 자신들이 무시를 당했단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