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희망연대’뿐 아니라 청장년 외곽단체인 ‘고청련’과 중소기업과 상인들이 주축이 된 ‘GK people’도 출범을 연기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고건 전 총리의 행보가 주춤하는 것도 여권의 정치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며 “재보선 후 우리당이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고 민주당은 힘을 얻으면서 고 전 총리가 움직일 공간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사실 고 전 총리는 5·31 지방선거 직후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의 압승이 아니라 여당의 완패”라며 여당에 더 방점을 찍으면서 여당의 상황변화를 엿보고 있었다.
친 고건 인사로 불리는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지방선거 직후 고 전 총리의 ‘대권 플랜’을 밝힌 적이 있다. 안 의원은 “7월에 ‘희망연대’가 출범하고 올 연말쯤 고 전 총리가 범여권 통합기구를 만들어 내년 2월까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희망연대, 국민중심당 일부가 통합해 신당을 만들고 내년 4~5월에 국민참여 경선을 치른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고 전 총리의 측근으로 통하는 의원들도 대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연대’ 출범이 계속 연기되면서 이런 대권 플랜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들려온다.
가장 먼저 지적되고 있는 것은 당초 예상과 달리 ‘희망연대’가 정치인을 배제하면서 인물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 측이 순수한 ‘민간인’만을 영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명망가들이 섣불리 참여하기를 주저해 출범이 늦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고 전 총리 측의 반응은 다르다. 대변인 격인 김덕봉 전 총리공보수석은 “‘희망연대’는 북한 미사일 문제와 수해복구 때문에 연기된 것이다. 정치결사체가 아니므로 정치적인 해석은 하지 말라”고 해명했다.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인물난에 대해서도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이 너무 몰려 옥석을 가리고 있다. 발기인만 100여 명이 내정된 상태다”라며 “‘희망연대’가 정식으로 출범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의 측근으로 불리는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금 상황에서 정치인을 영입한다면 누가 오겠나. 영남 인사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우리도 기대하지 않는다. 호남 쪽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이미 세를 장악하고 있는데 섣불리 정치인 영입에 나섰다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서 버림받은 인사들만 오지 않겠나”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 의원은 또 “최근 총리급에 준하는 한 명망가와 접촉해 고 전 총리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나서기에는 부담스러워 보이지 않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달리 해석하면 공개적으로 고 전 총리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아직 나서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솔직히 재보선 후 민주당에 힘이 실리면서 고 전 총리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고 전 총리에 대해 얼마나 깍듯이 잘했나. 아직도 고 전 총리와의 연대를 기대하지만 민주당을 통째로 바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고 전 총리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선전할 것이라 예상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재보선에서도 민주당이 의미 있는 승리를 거뒀으니 뜨끔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고 전 총리로서는 대선국면에서 민주당이 세를 잃고 자신의 깃발 아래 들어오는 것을 바랐겠지만 민주당이 한껏 탄력을 받은 지금 상황이 만만치 않게 보일 수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도 “고 전 총리는 정계개편의 매개는 될 수 있어도 정계개편의 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의 상황에 따라 움직여야지 지금의 상황을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고 전 총리의 세 확장을 어렵게 하는 것은 세 번째 문제는 자금이다. 정당에 준하는 조직을 만들고 세 확장에 나서려고 해도 ‘실탄’이 없어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소위 ‘정치전문가’들 중 대선이 1년 6개월이나 남은 상황에서 대권 도전 선언도 하지 않은 고 전 총리를 위해 자원 봉사할 사람은 없다. 게다가 고 전 총리는 정당도 없으니 국고보조금을 기대할 수 없고 지금 당장 그가 깃발을 세운다하더라도 ‘배지’(국회의원)들이 나서겠나. 고 전 총리로서는 당분간 계속해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 전 총리 측도 이를 인정한다. 김 전 공보수석은 “지금과 같은 구도에서는 움직일 공간을 찾기 어렵다. 고 전 총리도 아직 때를 더 기다리는 것 같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재촉하지만 민심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국민들은 여전히 고 전 총리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유지하는 게 맞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타이밍을 중시하는 ‘강태공’ 고 전 총리는 앞으로도 정치권에 더 큰 파도가 치고 바람이 더욱 거세지기를 기다리며 당분간 정치권의 입질만을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에서 보는 고 전 총리의 행보는 점점 뒷걸음질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