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뉴욕 메츠 스프링캠프에 앞서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있는 박찬호. 재기에 대한 굳은 의지와 여유가 충만한 모습이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AP/연합뉴스 | ||
박찬호가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고 새출발하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포트 세인트루시를 찾았다. 이전과는 달리 한국 기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메츠맨’으로 동화돼 가는 박찬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메츠의 스프링캠프 현장과 ‘눈높이’를 낮춘 박찬호의 적응 과정을 스케치해 본다.
2월 중순. 미국 시간 아침 9시45분. 아직도 메츠 클럽하우스에서 윌리 랜돌프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열심히 회의 중이다. 뛰고 달리고 땀 흘리고 하는 야구지만 캠프 초반은 거대한 밑그림 그리기다. 설명에 설명이 또 이어지는 까닭이다. 회의가 끝나고 코치 중 한 사람이 신호를 보내자 조그만 손가방에 글러브를 가슴에 품고 박찬호가 파란색 잔디 위로 서서히 걸어 나온다. 캠프에서 입는 메츠 유니폼은 텍사스 시절과 다소 흡사하다.
시범경기 시작 전까지 2주간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한데 모여 훈련한다. 그중 누군가는 짐을 싸서 마이너리그로 돌아간다. 중간에 빈 라커가 생기면 떠난 것이다. 스트레칭을 위해 모인 선수들 중 박찬호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우르르 한데 모여 있다. 예전에 이런 풍경이 펼쳐지면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하체를 관찰하는 것이다. 박찬호의 허벅지가 좀 두꺼운가. 탄탄한 다리로 땅을 울리며 뛰어 다니는 선수는 여지없이 박찬호였다. 캠프를 미 동부 해안으로 옮긴 박찬호는 역시 예년과 다름없었다. 겨우내 변함없이 많은 훈련을 통해 시즌 준비를 했다는 증거 아닐까.
▲ 18일 투구 연습을 하고 있다.(왼쪽), 투수코치 피터슨과 대화 중. AP/연합뉴스 | ||
박찬호는 팀 내 유망주 중 한 명인 애드킨스와 캐치볼을 가볍게 소화한 뒤 1대2, 1대3, 1대4 수비 훈련으로 이동했다. 투수조 중 한 명이 배트를 들고 공을 가볍게 땅볼로 때려내면 나머지 선수들이 글러브로 공을 걷어낸다. 이어 투수코치가 공을 굴려주면 포수 근처까지 뛰어나와 잡아낸 뒤 3루 또는 2루에 공을 던지는 시늉을 한다. 이 두 가지 훈련 모두가 스트레칭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내셔널리그 팀이라 캠프에선 역시 투수들의 타격 훈련도 아메리칸리그와 다른 점이다. 박찬호는 피칭머신에서 나오는 공을 번트 절반, 타격 절반으로 마쳤다.
이틀에 한 번씩 있는 불펜 피칭은 시범경기 전까지 박찬호에게 핵심 숙제. 2월 말까지 최소한 투구 수 70개가량, 즉 5이닝 이상을 던질 수 있는 페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팀 안팎에서의 평가, 그리고 박찬호 자신도 팀 투수 중 가장 빠른 페이스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시범경기까지 이어지고 시즌 초반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전반기 한 고개는 넘은 셈이 된다.
훈련 중간 중간에도 박찬호는 유머를 잃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10분 이상을 할애해 사인을 해주고 투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주전 포수 폴 로두카는 “박찬호의 대화 능력은 흠잡을 데 없이 매우 뛰어나다. 이는 중남미 선수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해준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60만 달러에 1년 계약, 그리고 선발 자리 또한 보장되지 않았다. 그래도 박찬호의 표정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야구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였고 바뀐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달라졌다.
포트 세인트루시=김성원 JES 기자 rough1975@je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