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보 | ||
홍명보
태어날 때부터 카리스마로 무장했을 것 같은 축구대표팀 홍명보 코치. 대표팀의 정신적인 지주인 그도 1992년에는 선배들의 눈치를 슬금슬금 봐야 했던 ‘신병’이었다.
1990년 말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상무에 입대했던 홍명보는 1992년 포항제철(포항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출발은 누구보다 화려했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37경기에 출전해 팀 우승을 이끌며 그해 MVP에 올랐다. K리그 역사상 신인이 MVP를 받은 것은 지금까지 홍명보가 유일하다.
1997년 여름까지 K리그 137경기에 나서 철벽 수비를 뽐내던 홍명보는 벨마레 히라스카와 계약하며 일본프로축구(J리그)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홍명보는 벨마레와 가시와 레이솔에서 뛰며 J리그에 자신의 족적을 남겼다. J리그 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으로 활약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는 잡지 <주간소년>에 만화 주인공으로 실리기도 했다.
홍명보는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친정팀 포항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6개월 뒤 미국프로축구(MLS) LA 갤럭시로 옮기며 축구행정가가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2004년 은퇴 후 행정가로의 변신을 꿈꾸던 홍명보는 2006년 독일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코치로 축구대표팀에 합류했다. 또 다른 신화를 쓰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 라데 | ||
포철은 1992년 늦봄 22세의 보스니아 출신 공격수 라데 보그다노비치를 8만 달러라는 헐값에 영입했다. 용병 테스트 과정에서 꽤 하는 걸 보고 괜찮겠다 싶어 계약했다.
라데는 ‘노다지’였다. 1996년까지 K리그 147경기에 나가 55골 35도움을 기록했다. 황선홍과 함께 포철 공격진을 리그 ‘NO.1’으로 만들었다. 당시 황선홍-라데 투톱은 다른 팀 수비수들에게는 악몽이었다.
라데는 1997년 J리그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를 거쳐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갔다. 하지만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NAC 브레다(네덜란드)에서는 노정윤과, 베르더 브레멘(독일)에서는 이동국과, 아니마 빌레펠트(독일)에서는 차두리와 한솥밥을 먹으며 ‘친한파 선수’로 남았다.
라데는 2003년 축구화를 벗은 뒤 에이전트로 변신했고 2006년부터는 고향인 세르비아-몬테네그로 2부 리그 바스크의 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정원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SV 리트는 2005년 말 소속팀 미드필더 서정원의 체력테스트 결과를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30대 중반인 선수가 20대 초반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정원의 호적상 나이는 37세다. 하지만 그의 실제 나이는 38세(69년생)이다. ‘신문나이’를 적용하지 않았을 경우 운동선수로는 환갑 진갑 다 넘긴 39세인 셈.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부러움을 받는 서정원은 1992년 LG(안양)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데뷔했다. 폭풍 같은 측면 돌파로 K리그와 아시아를 정복했던 서정원은 더 큰 무대를 원했다. 1997년 12월 프랑스 르샹피오나 스트라스부르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이듬해 1월 올랭피크 리옹과의 르샹피오나 데뷔전부터 골 맛을 본 서정원은 성공적인 유럽생활을 열어가는 듯 했지만 카메룬 출신 감독과의 불화로 짐을 싸야 했다.
▲ 서정원(왼쪽), 김주성 | ||
서정원은 오스트리아 진출 1년 만에 T-모바일 분데스리가를 평정했다. 2005년 오스트리아 프로축구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불혹을 앞둔 서정원은 여전히 필드를 누빈다. 내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라면서….
김주성
삼손 같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아시아를 누볐던 김주성. 1999년 은퇴한 그는 지도자 수업을 받는 대신 행정가로 변신했다. 대한축구협회에 입사해 현재 국제부장으로 일한다.
김주성은 왜 행정가의 길을 택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훌륭한 행정가가 되려면 실전에서 성공과 실패 등을 모두 겪어야 한다”며 선수시절부터 행정가를 꿈꿨다고 말한다.
김주성은 1992년 독일 분데스리가 보훔에 입단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면제를 받은 김주성은 이탈리아 포르투갈 미국 등의 프로팀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해외진출 금지조항에 걸려 K리그에 남았다. 당시는 군 면제를 받아도 5년간 해외진출이 금지됐던 시절이다. 김주성은 금지조항이 풀린 1991년 말 분데스리가 뒤스부르크에서 입단테스트를 받고 합격했다. 하지만 신병교육을 안 받은 상태라 해외진출을 뒤로 미뤄야 했다. 이듬해 초 4주간의 신병교육을 이수한 김주성은 그해 8월 뒤스부르크가 아닌 보훔에 입단했다. 김주성은 보훔에서 두 시즌을 뛰면서 35경기에 나가 4골을 넣었다.
전광열 스포츠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