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일본 출장 도중 박동희가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도쿄 신주쿠의 숙소에서 갑작스런 뉴스를 듣고 기자도 충격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호형호제 하는 관계였고, 여러 번 소줏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개인사를 털어놓곤 했던 사이다. 부인이 부산에 음식점을 오픈했으니 한 번 찾아오라던 당부, 유소년 야구 발전을 위해 세워놓은 다부진 계획을 전화로 얘기했던 흥분된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지난 10일 롯데와 LG의 부산 개막전 때 사직구장 전광판에는 ‘그의 40년 짧은 인생에서는 우리가 찰나로 남을지 모르나 우리의 인생에서 그는 영원으로 존재합니다’란, 고 박동희를 추모하는 문구가 새겨졌다.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그의 명복을 빈다.
박동희는 92년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MVP를 차지했다. 시리즈에서 2승1세이브를 거두며 기자단 투표에서 92%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본래 ‘슈퍼 베이비’란 별명은 그다지 영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기대에 비해 못 미치는 성적을 남기곤 했다는 의미가 배어 있다. 하지만 그해 한국시리즈에서만큼은 입단 3년 만에 억대 투수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