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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내에서 세를 불려가고 있는 이원집정부제 개헌론 의 중심에는 박상천 최고위원(왼쪽)이 대표하는 정치개 혁특위가 있다. 사진은 지방선거에 참패한 다음날인 지난 달 14일 기자회견장. | ||
먼길을 돌아 다시 점화되려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안은 이번엔 어느 단계까지 갈 수 있을까. 이 기구한 운명의 이원집정부제 개헌의 어제와 내일을 살펴보자.
개헌신호는 민주당 정치개혁 특위가 앞장섰다. 개헌의 방향은 권력분산.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는 권력형 정치부패와 국민분열의 정치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게 특위가 내놓은 개헌의 명분이다. 민주당 정치개혁특위를 대표하는 박상천 민주당 최고위원은 세 가지 개헌안을 제시했다. ① 프랑스형 분권적 대통령제(이원 집정부제) ② 4년 중임 대통령제 ③순수내각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분산한다는 명제에 비춰 이원집정부제에 무게가 실려 있다.
대통령은 통일·외교·국방을 맡고 총리가 내정을 책임지는 분권적 대통령제다. 이 경우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아니고 국회 다수파에서 선출되기 때문에 프랑스처럼 대통령과 총리가 정당이 다른 정부도 탄생할 수 있다.
이런 생소한 개헌논의가 가능할까. 민주당 측은 “대통령 선거 실시 이전에 개헌한다는 게 목표지만 뜻대로 안 되면 대선 공약으로 내걸게 하는 것”으로 잡았다. 대통령 선거까진 6개월, 그 기간에 개헌을 진전시킬 수 있을까.
개헌은 원내 3분의2 찬성이 절대요건, 따라서 한나라당의 동의가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개헌논의를 반이회창 연대를 위한 방편으로 보는 한나라당이 개헌에 동조할 리 없고 그러니 대선 전 개헌은 불가능하다.
개헌추진파들은 개헌이 대세를 이루면 한나라당 안에서도 호응하게 돼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지만 가능성은 아주 낮다. 결국 현실적 목표는 개헌을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하고 이 공약으로 여러 정파를 묶는 정계재편성을 이루는 것, 다시 말해 개헌을 내걸고‘반이회창 정치연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개헌연합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 답에 다가가기 전에 이원집정부제 개헌구상의 발자취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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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선 패배 후 ‘때를 기다려온’ 이인제 의원도 개헌추진에 상당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 ||
“박 대통령과 그 세력은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선거를 통해 물러나게 할 수 있다고 믿는가. 어림없는 일이다. 3선 개헌은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일단 열어주자. 그런 뒤 박 대통령의 3기 임기 기간에 대통령은 안보·외교를 맡고 내정은 총리가 맡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안을 함께 발의하자. 박 대통령에게는 종신대통령의 길을 열어주고 내정은 내각제 체제로 정권을 교체하는 민주정부 운영을 하자.”
3선 개헌안을 공화당 의원총회가 국회에 발의하기로 결의하던 날 4인체제는 이후락 비서실장, 김형욱 정보부장 해임을 선행조건으로 제시,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했다. 겉에 내세운 건 부패척결, 실제 겨냥한 것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안을 추진하려할 때 이를 막아설 대통령의 측근 실세를 미리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대통령은 이 건의를 받아들여 둘을 해임했다. 그러나 그 얼마 후 이후락을 정보부장으로 기용, 바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준비하는 4인체제 제거작업을 했다.
박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3기 집권 초기, 오치성 내무장관이 4인체제의 관료조직을 자르기 시작하자 위기를 느낀 4인체제가 야당으로 하여금 오 내무 해임안을 내게 해 통과시키려 했다. 각료 해임안이 나오고 여당내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면 정보부가 나서서 협박하고 회유해 돌려놓는 게 일상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 때만은 정보부가 손을 쓰지 않고 방관했다. 공화당의 김재순 총무가 이후락 정보부장을 찾아 “이대로 투표하면 통과된다”며 발을 동동 굴러도 이후락 부장은 “괜찮아요. 잘 될 겁니다”라며 한가롭기만 했다.
해임안 표결 전야, JP가 신문로 김성곤 자택을 찾아왔다. “성곡. 청와대 기색이 심상치 않아. 큰 일이 벌어질 거요. 이번엔 물러서는 게 좋겠소”라고 충고했다. 김성곤도 청와대 기류를 감지하고 있었다.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마음을 깊이 간직하겠소. 그러나 화살은 시위를 떠났소. 결말을 볼 수밖에 없소”라고 비장한 결의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김성곤은 당내 반란을 지령했고 오 내무 해임건의안은 통과됐다.
한가롭던 정보부가 서슬 퍼렇게 나선 게 이 때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해임안에 찬성한 4인체제의 중심인물, 김성곤 길재호를 비롯해 40여 명의 의원을 중앙정보부로 잡아 들였다. 잡아들일 명단이 사전에 마련돼 있었던 듯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심문이 아니라 바로 고문이 시작됐다.
혹독한 고문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김성곤 길재호 두 의원은 의원직을 내놓고 정계를 떠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정보부에서 풀려났다는 말은 있었지만 한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렇듯 참담한 모습으로 4인체제가 무너지면서 이원집정부제 개헌구상은 공론에도 부쳐보지 못한 채 유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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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9년 공화당의 김성곤 의원(왼쪽) 등 4인에 의해 시 도된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박 대통령에 의해 좌절되었다. | ||
그 혼돈의 봄, 권력향방에서 저마다 계산이 달랐다. 야당의 두 김씨, YS·DJ는 유신헌법이 앗아간 대통령 직선제 회복을 요구했다. 공화당을 이어받은 김종필도 여기 동조했다. 이른바 3김씨는 저마다 직선이면 대통령은 내 것이라는 계산들.
그러나 군부, 관료, 그리고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 등 ‘유신본당’의 정치전망은 훨씬 더 냉철했다. 대통령을 직선제 선거로 뽑게 되면 베일에 가려있던 수난의 표본, DJ가 단연 유리하다. DJ한테 정권이 가는 사태는 용납할 수 없다. DJ는 보도연맹 출신, 국군장교가 될 수 없는 사람에게 국군통수권을 넘길 수 없다. 이게 당시 군부의 논리였다. 당시의 최규하 대통령, 신현확 총리, 이들 역시 야당에 정권을 넘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이원집정부제 헌법이다. 이원집정부제 헌법을 채택, 국가수반은 우리 중 누군가가 맡아 외교 안보분야의 정책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가야 한다. 최소한 국군통수권만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지켜야 한다.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가꾼 대한민국인가. 이래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준비했다. 그런 개헌을 가능케 하자니 시간이 필요했다.
서울의 봄, 야당과 운동권은 개헌을 독촉하고 최규하 정부는 준비를 내세워 시간을 벌고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부딪치던 정치의 불씨가 바로 이원집정부제 개헌구상이었다. 그러나 제2차 이원집정부제 헌법 역시 전두환의 군부가 5·17 쿠데타로 잠재워버렸다.
제3차 이원집정부제 헌법구상은 ‘융통성 없는 대쪽, 이회창이 제왕적 대통령이 되어 보복과 청산의 칼날을 휘두를 사태를 막자’는 게 명분이고 목표다. 권력을 분산하고 그런 틀 위에서 서로 손을 잡자는 것이고 그래서 이번 경우가 1∼2차 이원집정부제 개헌 추진 때에 비해 정파의 호응이 넓다.
우선 민주당은 개헌추진 그룹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당내 최대 의원모임인 중도개혁포럼, 동교동 구파 모두 개헌그룹이다. 이인제 의원은 국회에 헌법개정추진기구를 만들자고 나섰다. 결국 민주당에선 노무현 후보 팀을 빼곤 모두 개헌추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자민련도 개헌을 내건 정계재편성이 유일한 활로다. 김윤환의 민국당, 박근혜의 미래연합, 월드컵 바람을 타고 떠오르고 있는 정몽준 의원도 잠재적 개헌지지 세력으로 손꼽힌다. 그러고 보니 한나라당을 개헌추진 그룹이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세력이 한나라당을 넘어서는 세력으로 영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원집정부제로 뭉칠 반이회창 연합의 성패는 정파의 숫자가 아니라 개헌공약을 짊어지고 나설 유력한 대통령 후보다. 누구처럼 오리발을 내미는 게 아니고 당선 후 개헌약속을 지킬 사람이라야 하고 이회창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잠재적 후보는 많다. 박근혜 정몽준 고건 그러나 이 중의 누구도 이회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요 며칠 새 떠오르는 이름이 이홍구 전 총리다. 아무튼 개헌연합은 출범신호가 올랐다.
이영석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