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전국체전 3관왕 장미란. 사생활은 모두 뒤로한 채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목표로 열심히 땀 흘리고 있다. 하지만 역도를 빼면 그도 외모에 자꾸 신경 쓰는 평범한 20대 아가씨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18일 2007~2008 프로농구 개막전의 시구를 하기 위해 울산으로 향하는 장미란(24·고양시청)을 부산 김해공항에서 먼저 만나 ‘미란스러운’ 인터뷰를 나눴다.
지난 8일 광주에서 열린 전국체전. 장미란은 박태환(수영)과 함께 전국체전 최고의 스타로 관중들을 끌어 모았다. 특히 장미란은 남학생들의 뜨거운 응원과 박수 속에서 대회 3관왕을 거머쥐었다. 이에 대해 장미란은 “돈 좀 썼죠. 애들 좀 풀어달라고 큭큭”이라며 농담으로 반응했다.
“주변에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 저처럼 듬직한 스타일이 신기해 보였을까요? 그래서 학생들이 많았나? 학생들이 좋아해주면 기분 좋죠. 요즘 학생들, 비인기 스포츠에 별 관심 없잖아요. 그래도 용상이 뭔지, 인상이 뭔지는 알더라구요. 그럼 된 거죠. 사실 전 젊은 사람들보단 어른들한테 더 인기가 있어요. 푸근해 보이잖아요.”
처음 운동할 때는 기자들조차 역도가 아닌 유도 선수라고 잘못 알고 들이댈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역도 선수’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장미란’ 자체를 알고 인정해 준다. 무엇보다 그 부분이 행복하다는 그녀다.
얼마전 <조선일보>에서 장미란의 어린시절을 소개하며 장미란과 어머니 이현자 씨가 밥 때문에 자주 실랑이를 벌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밥을 더 먹으려는 장미란과 딸을 예쁘게 키우고 싶은 어머니의 바람이 충돌을 빚으며 ‘밥과의 전쟁’으로 비화된 것.
“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그 얘기가 재밌겠지만 저한테는 결코 좋은 추억이 아니에요. 저도 여자인데 밥 때문에 엄마랑 다퉜다는 얘기는 좀 그렇잖아요. 감추고 싶은 어린시절 일들이 하나 둘씩 다 공개되는 바람에 사람들 눈을 피해 숨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이젠 포기 상태예요. 더 이상 숨길 것도 없고 나올 것도 없고… 하하.”
장미란은 초등학교 때 체중이 불어나지 않았다면 역도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역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역기를 들기 시작했지만 딸에게 역도를 시키는 아버지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시절도 있었다.
“제가 날씬하고 예뻤다면 악기를 시켰지 역도를 시키지 않으셨을 거예요. 여자가 역도하는 게 너무 창피해서 아빠를 원망할 때도 있었어요. 어렸을 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아빠를 닮았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어리석었죠. 동생들이 잘생긴 부모님의 외모를 물려받았다면 전 안 보이는 체력 조건, 뭐 이런 쪽만 닮아서 손해보는 느낌도 있었어요.”
장미란의 체중은 115kg. 지금이야 100kg이 넘는 체중이 ‘맞춤 옷’처럼 편안하지만 한때 99kg과 100kg을 오락가락할 때는 점점 불어나는 체중 때문에 좌절과 갈등 속을 마구 헤엄쳐 다녔다고 털어 놓는다.
“99와 100kg은 1kg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전달되는 숫자의 의미는 굉장히 다른 느낌을 주잖아요. 그래서 두 자리 숫자를 유지하려고 무지 애를 썼어요. 더욱이 고등학교 때 운동하는 오빠들이 자꾸 놀려대는 바람에 100kg은 절대 넘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막상 100kg이 되니까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더라고요. 좋은 기록을 위해선 체중 증가가 필수 요건이었어요. 감수할 수밖에요.”
장미란은 국내대회보다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게 더 좋다고 한다. 국제대회에는 자신보다 체중이 훨씬 많이 나가는 선수들이 수두룩하기 때문. 그러면서 이런 입담으로 기자를 자지러지게 만든다. “무솽솽 탕공홍 이런 애들을 죄다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어요. 그 친구들 중간에 제가 딱 서 있으면 얼마나 돋보이는데요, 날씬해 보이기까지 하니까 큭큭.”
장미란의 동생 장미령도 고양시청에서 역도 선수로 활약 중이다. 외모와 체격, 성격 등이 전혀 딴판인 동생이 역도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장미란은 결사 반대했다. 역도 선수는 자기 혼자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기자와 함께 환한 웃음으로 찰칵. | ||
그래도 장미란은 동생만큼은 또래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배움과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배움에 대한 ‘한’이 단단히 또아리를 틀고 있는 만큼 동생이 언니의 그것을 풀어주기 원했던 것이다.
“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운동 선수는 무식하다는 말이에요. 특히 힘 쓰는 종목의 선수들한테는 그런 시선이 왕창 쏠리게 돼요. 그래서 뒤늦게라도 대학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얼렁뚱땅이었죠. 늦게 시작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얼렁뚱땅해서 빨리 졸업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이적 문제로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됐어요. 정말 속상했습니다. 왜 나한테만 그런 잣대가 적용되는지, 억울했고 화도 났는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너무 잘 된 일인 거예요. 얼렁뚱땅으로 학위를 따면 뭐하겠어요. 저한테 지식이 없는데. 제 지식으로 진짜 논문을 써야 맞는 거잖아요.”
장미란은 자신이 직접 논문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될 때, 제대로 대학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졌을 때 다시 대학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래서 한때 아픔으로, 원망으로 남았던 ‘얼렁뚱땅 대학’을 버리고 ‘지식’으로 가득 채운 배움의 과정을 밟는다면 순도 100% 운동 선수 출신의 학위 소유자가 나올 것이다.
장미란은 운동 선수이기 전에 여자다. 외모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젊은 나이다. 그러다보니 은근히 매스컴에 나타나는 자신의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사용되는 사진들 대부분이 역기를 들고 마지막 피치를 올릴 때 얼굴에 핏줄이 두드러진 모습들인데 장미란으로선 우락부락하다 못해 다소 흉측해 보이는 이 사진들이 여간 못마땅한 게 아니다.
“양궁 선수는 멋지게 활 쏘는 모습을 잡아주고 (박)태환이는 근육질 몸매를 돋보이게 배려하는데 유독 저만 이 악물고 부르르 떨며 역기 드는 장면이 자주 나가더라고요. 전 턱도 접히고 눈도 작고 주름도 많아서 그런 감동스런 모습조차 전혀 예쁘지 않거든요. 그런데 어느 팬이 제가 역기 들어올리는 마지막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고 위로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가졌고 최면을 걸었어요. 장미란의 가장 예쁜 모습이 역기 들어 올린 순간이라고.”
2008베이징올림픽 때까진 모든 걸 묻어 두기로 했다. 좋아하는 드라마 시청도, 외모를 가꾸고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도,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성 문제도, 모두 올림픽 이후의 ‘숙제’들로 미뤄 놨다. 그래서 당분간은 절제와 인내란 단어와 절친하게 지내야 한다. 장미란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 ‘시나리오’를 잘 완수해 낼 것이다.
지난 9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의 최고 역도 스타 무솽솽을 물리치고 3연패를 거머쥔 장미란은 넘어서지 못할 ‘벽’처럼 느낀 무솽솽을 이겼다는 사실에 감격 시대를 맛봤다. 도하아시안게임에서 무솽솽에게 무릎을 꿇었던 경험이 있던 탓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또 패하면 더 이상 무솽솽을 이길 방법도, 자신도 없을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앙의 힘 때문이었는지 시합 때가 되니까 저절로 마음이 편해져옴을 느꼈다.
“항간에는 무솽솽이 내년 올림픽 때 안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 있어요. 하지만 전 그런 기대 안 합니다. 누가 나오든 모두 버거운 상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솽솽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을 생각이에요. 이전에 국제대회 나가면 중국 선수들이 역기를 떨어트리기만 바랐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세계선수권대회) ‘너도 다해라, 나도 다 할 테니까’하는 생각으로 바뀌더라고요. 경쟁은 영원해요. 제가 역기를 드는 순간까지는 말이죠.”
10년 후 자신의 모습에 대해 어느 나라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그림을 그린 장미란은 “요즘엔 말 꺼내기가 무섭다. 인터뷰하다 선수촌에서 영어를 열심히 배우는 중이라고만 말했는데 다음날 내가 영어를 되게 잘 하는 것처럼 기사화 됐더라. 그 후 누가 나한테 영어로 물어볼까 두려워 사람을 피해 다녔다”며 깔깔대고 웃는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촬영을 하다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 스타일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선사한 장미란은 마지막까지 서비스를 잊지 않는다. “보자마자 팔씨름 하자고 덤비는 사람이요. 제가 그렇게 힘이 세 보여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