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권도 경기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 ||
2005년 싱가포르 IOC 총회에서 태권도는 2표 차이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살아남았다. IOC가 상세한 투표결과를 공식적으로는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2표 차이’가 정확한지는 의문이지만 장웅 북한 IOC위원의 입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에 상당히 신뢰가 가는 정보다. 그리고 IOC 내부 분위기도 태권도가 근소한 차로 목숨을 연명했음은 분명하다. 2009년 코펜하겐 IOC총회를 1년여 앞두고 태권도에 대한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 올림픽종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IOC 헌장은 ‘올림픽 정규종목’(Olympic Sports)과 ‘올림픽 참가종목’(Olympic Program)을 구분해 사용한다. 하계 28개, 동계 7개의 ‘올림픽 정규종목’이 있다.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는 정규종목과 참가종목이 일치한다. 하지만 자크 로게 IOC위원장 취임 후 ‘개혁정책’이 추진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즉 2012년 런던 대회부터는 대회 7년 전 IOC 총회에서 IOC위원(정원 115명)의 반수 이상이 찬성표(무기명 비밀투표)를 얻지 못하면 참가종목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이제는 2005년 싱가포르에서 탈락한 야구나 소프트볼처럼 정규종목이면서 참가종목이 아닌 종목이 나오게 된 것이다. 참고로 후보종목도 있다. 말 그대로 골프 가라테 우슈 등 올림픽종목이 되려고 하는 종목을 말한다. 후보종목은 IOC위원 3분의 2 찬성을 받아야 정규종목이 되고, 또 절반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참가종목이 될 수 있다.
2007년 7월 과테말라에서 IOC총회가 열렸다. 이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때 IOC는 올림픽종목에 대한 규정을 슬쩍 바꿨다. 후보종목이 정규종목으로 되는 커트라인을 3분의 2에서 과반수로 줄인 것이다. 2005년 싱가포르 총회에서 아쉽게 3분의 2를 못 채워 정규종목이 되지 못한 가라테로서는 올림픽 진입의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태권도가 참가종목에서 제외되면 신규 격투기 종목으로 가라테의 입성이 유력해졌다고 할 수 있다. 가라테가 총력을 기울여 IOC위원을 대상으로 가라테 찬성, 태권도 반대 물밑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2009년 코펜하겐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원 안 사진 오른쪽은 조정원 WTF 총재. | ||
2005년 싱가포르 총회를 앞두고 WTF는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200페이지 분량의 개혁안을 IOC에 제출했다. 그것이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그런데 최근 WTF 집행부와 각을 세우고, IOC에 ‘맨체스터 돈봉투 사건’을 고발한 낫 인드라파나 IOC위원(태국)이 개혁위원회 위원장이었다.
WTF 부총재이기도 한 인드라파나는 IOC에 돈 봉투 사건을 신고한 것은 물론이고, 이후 WTF가 오히려 자신을 공격하자 크게 격분했다. IOC가 최근 윤리위원회의 청문회를 거쳐 공식적으로 WTF에 담당자 징계 및 투명한 회계처리라는 강경한 조치를 취한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IOC가 WTF를 좋게 보기 어려운 실정.
또 조정원 WTF 총재와 장웅 ITF 총재가 로게 앞에서 약속한 두 단체의 통합도 지지부진하다. 최근 로게 위원장을 만난 장웅 총재가 조정원 총재에게 8월 베이징올림픽 이전에 회동하자고 제안했지만 조 총재 측이 올림픽 뒤로 늦춰 통합작업에 대한 진척이 전혀 없다. 여기에 이번 베이징올림픽을 목표로 추진했던 판정문제 해소를 위한 ‘전자호구 도입’도 제자리걸음. 조 총재가 올 초 직접 IOC위원 도전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1차 관문을 넘지 못해 IOC 내 스포츠외교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이렇게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잔류가 힘들어지는 상황으로 치닫자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WTF 관계자를 비밀리에 불러들여 따져 물었다. 하지만 WTF는 “조정원 총재가 취임한 지난 4년간 개혁정책을 성공리에 수행했고, 내년 9월 올림픽 종목으로 남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일요신문>의 정보에 따르면 2016년까지 올림픽이 26개 종목으로 치러지고, 2020년부터는 25개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태권도가 2016년에 살아남는 것도 힘들지만, 2020년에는 더욱 장담할 수 없는 것. 현재 26개 종목 중 한 종목이 빠진다면 태권도가 1순위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골프가 위협적이다.
태권도 전문매체의 한 기자는 “WTF 집행부는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탈락해도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태권도인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의 문제다. 내부적으로 올림픽 잔류를 성사시킬 원동력이나 시스템이 없다. 이제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9월 4일은 태권도의 날이다. 1994년 이날 파리 IOC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코펜하겐 IOC총회는 2009년 10월 2일 열린다. 이날이 태권도의 ‘악몽’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WTF와 태권도인은 물론 정부의 노력도 시급한 시점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