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다저스와의 경기서 최악의 등판을 한 파드레스 백차승. 그러나 지난 9일 다저스와 다시 맞선 그는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며 홈구장 첫 승리를 이끌었다. 연합뉴스 | ||
늘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백차승을 그날 경기가 끝난 후 원정팀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그는 졸전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으며 “너무 볼카운트를 불리하게 시작한 것 같다. 시작부터 어렵게 게임을 가져갔고 매니에게 한 대 맞고 흔들렸다. 밸런스가 안 좋았는지 초반에 패스트볼의 제구가 잘 안됐다”고 말했다.
백차승은 남은 시즌이 자신의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샌디에이고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남은 시즌 4번 정도의 등판에서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백차승은 “맞는 것은 할 수 없는데 내 피칭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몸은 시즌 후반이니까 좀 피로하지만 그건 선수들마다 다 있는 것이다. 자신은 있는데 뭔가 조금 부족하다. 두 세 게임 잘 던지다 한 게임 안 되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매 경기 기복이 심한 것이 문제다”라며 자신의 단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 9일(한국시간), LA 다저스와 다시 맞선 백차승은 7이닝을 3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 투수가 됐다. 대단히 중요한 승리였다. 백차승은 올 시즌 홈구장인 펫코파크에서 열린 10게임(9선발)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7패만 당했었다. 대부분의 투수들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펫코파크에서의 그런 부진은 코칭스태프와 구단 수뇌부에게는 미스터리였다.
내년 시즌 젊은 선수들로 리빌딩 계획을 갖고 있는 파드레스는 백차승도 분명히 그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홈구장에서 부진을 거듭한다면 재고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백차승은 올 시즌 최악의 등판을 한 바로 다음 경기에서 최고의 피칭을 하면서 홈구장 첫 승리를 장식한 것이다.
특히 다저스와의 대결에서 승리라는 것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불과 1주일 전에 난타를 당했던 팀인데다 파드레스와는 숙명의 라이벌 관계다. 또한 다저스는 8연승 가도를 달리며 경기당 6점 가까운 득점을 하는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었는데 백차승의 역투에 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었다.
다저스전 쾌승을 거둔 후 백차승은 “지난 경기에서는 밸런스가 안 좋았는지 공이 전반적으로 높아 고전했다. 오늘은 낮게 던지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백차승은 특히 지난 2일 대결에서 2점 홈런 포함해 3타점을 올리며 활약했던 다저스 주포 매니 라미레스와의 3번 대결을 삼진 한 개 포함한 연속 범타로 틀어막아 기쁨이 두 배가 되기도 했다.
백차승은 최고 구속 151km의 강속구를 지니기는 했지만 커브와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 다양한 구질과 제구력을 갖춘 투수다. 강력한 결정구가 없기 때문에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이끌고 타자들과의 수 싸움에서 우위를 보여야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다저스와의 연속 대결은 백차승의 한계와 능력을 모두 보여준 경기들이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강점들을 밀고 나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고 있다.
백차승은 샌디에이고 생활에 이제는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일단 투수 출신 감독인 버드 블랙이 백차승에 대단히 우호적이다. 8월 초 뉴욕 셰이스타디움에서 만난 블랙 감독은 “기본기가 충실하고 이적 후에 우리 팀을 위해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알고 선발 투수로서의 자질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블랙 감독은 투수로서뿐 아니라 타자로서의 백차승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동료들과의 관계나 인간적인 면으로도 백차승에 매료됐음을 숨기지 않았다.
타격에 대해 묻자 백차승은 “미국 와서는 (아메리칸리그에 있었기 때문에) 타격을 안 하다가 10년 만에 연습을 하고 있다. 옛날 학교 다닐 때처럼은 공이 아직 안 보여 직구만 노리고 치고 있다. 그러나 학교 다닐 때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4번 쳤었다”고 말했다. 백차승은 이미 올 시즌에 홈런 한 개를 때리면서 타격 능력을 뽐내고 있다.
올림픽으로 이야기가 옮겨가자 백차승은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 좋았다. 너무 뿌듯했다. ‘한국팀이 이겼다’고 자랑을 하자 감독, 코치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며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인터넷이 안 돼 직접은 못 보고 소식만 들었는데 정말 대단했다”며 조용하던 백차승이 모처럼 흥분된 목소리를 들려줬다.
그러다가 WBC 이야기가 나왔다. 혹시 부르면 가겠느냐고 묻자 잠시 혼돈스런 표정을 짓더니 “생각도 안 해봤다. 나를 오라고 하겠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자격은 분명히 있지만 부르기도 힘들 것이고 불러도 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이제 혼자 사는데 익숙하다는 백차승은 벌써 미국 야구 생활이 10년째다. 샌디에이고로 옮긴 후 식사는 사 먹는 걸로 해결했는데 요즘은 그것도 물려서 아파트에서 밥을 해먹는단다. 반찬은 김치, 계란 등으로 아주 간단하다며 웃는다.
백차승에게 결혼 여부에 대해 물었더니 “결혼은 아직 아니다. 사귀는 사람도 없다. 혼자 사는데도 익숙하고 당분간은 야구만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공연히 쓸쓸함이 느껴졌다.
미국 야구 10년째라지만 메이저리그 풀타임은 올해가 처음인 백차승은 선발 투수로 점점 진화하고 있다. 아마도 내년에는 꾸준히 파드레스의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반가운 소식들을 자주 전해줄 것 같다.
메이저리그 야구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