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18일 김제 외국인 며느리 배구단은 창단을 기념해 전북지역 선배 배구단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오전 9시 30분, 김제중앙초등학교 체육관이 시끌벅적하다. 학교가 쉬는 토요일이 아니라 학생들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나 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생소한 언어가 귓가를 파고든다. 체육관에 들어서자 피부색이 다른 여성들이 배구공을 들고 열심히 연습에 임하고 있다. 토스를 하는 폼이 아직은 서툴지만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창단식을 하기에 앞서 한국인 어머니 배구단과 함께 생애 첫 경기를 가질 예정인 김제 외국인 며느리 배구단. 같은 김제군이라도 초등학교까지 오는 데 2시간이 걸리는 이들도 있다 보니 10시가 넘어선 후에야 40명의 배구 단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부분이 필리핀인이다. 그중 한국에 시집온 지 7년째라는 제니제니 씨(36)는 며칠 전 자신이 일하는 김제자활센터 체육대회를 치른 후 아직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배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배구 할 때마다 집안과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팍팍 풀리는 기분이에요. 처음에는 날아오는 공이 너무 무서워서 ‘꺅꺅’거리며 피하기 바빴는데 공을 맞히기 시작하고부터는 너무 재밌어요. 처음 배구단 한다고 할 때 시부모님 반대는 없었어요. 아이 낳기 전에는 나가는 것도 꺼려하셨지만 아들, 딸 낳고 나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세요.”
10시 반, 드디어 김제 외국인 며느리 배구단의 첫 경기가 시작됐다. 어떻게 인사를 하고 경기를 시작할지 몰라 감독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 바쁘다. 얼떨떨하게 경기가 시작되자 라인 밖으로 공이 떨어져도 아웃인지 모르고 공을 쫓아가며 아쉬워하는가 하면 번번이 서브를 넣다 네트에 걸려 점수를 잃는다. 하지만 선수들 간의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표정만 보자면 점수를 리드하고 있는 한국인 어머니 배구단이 지고 있는 듯하다. 서로서로 “파이팅”을 외치고 누군가 실수해도 “Good!(잘했어)”이라며 손바닥을 마주치는 게 마치 축제 같다. 점수는 7점차. 점수 차가 벌어질수록 서로의 자국어가 빠르게 오가는 게 마치 승리를 바라는 주문같이 들리지만 결국 14 대 21로 1세트가 종결됐다.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2세트부터는 반전이 일어났다. 한국인 어머니 배구단이 연달아 실수를 하기 시작한 것. 외국인 며느리들은 그야말로 신이 났다. 오히려 한쪽에서 조용히 놀고 있는 자녀들보다 더 아이처럼 들떴다. 이 모습을 보는 서주상 회장이 “이들이 어디서 이렇게 환호도 하고 안타까워할 수 있겠냐”며 뿌듯해 한다. 경기를 관전하는 남편들도 덩달아 “진짜 많이 늘었다~ 그런데 실력은 비슷비슷하네”라며 아내들의 실력을 품평하기 바쁘다. 응원과 상대방 실수에 힘입어 3점을 리드하며 2세트를 따낸 김제 외국인 며느리 배구단.
점수가 날 때마다 엉덩이를 실룩대며 춤까지 췄던 김제 외국인 며느리 배구단은 결국 15 대 11로 3세트까지 이기며 값진 첫 승리를 일궈냈다. 승리의 환호가 그대로 이어져 창단식에 앞서 노래방 기기를 켜놓고 노래하고 춤추던 김제 외국인 며느리 배구단.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과 힘든 시집살이 속에서 활력을 되찾아준 배구에 대한 자축 무대였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