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복싱의 영원한 히어로. 사진 위부터 유명우 장정구 박종팔 지인진. 프로복싱계는 이들의 빈자리를 채워 줄 꿈나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 ||
빈사상태에 빠진 프로복싱이 활력을 얻을 수 있을까. 그 야심찬 계획을 들여다봤다.
서지오 모라, 피터 만프레도 주니어, 알폰소 고메즈. 복싱 마니아 정도라면 알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프로복서들의 이름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복싱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아직까지도 이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다. 2005년 미국 지상파 방송인 NBC(올림픽방송사로 유명)가 ‘콘텐더’라는 이름으로 젊은 선수 16명의 100만 달러 도전기를 방영했고, 미 대륙을 열광시켰기 때문이다. 이들은 콘텐더 시즌1에서 1~3위를 차지한 선수들이다. 인기만 높은 것이 아니라 실력도 ‘짱짱’해서 세계타이틀매치를 치르기도 했다.
이 콘텐더는 액션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제작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스탤론은 불멸의 복싱영화 <록키> 시리즈로 유명하다. 그만큼 복싱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스스로 ‘복싱이 미국인들의 삶에 좀 더 다가가도록 만들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제작 동기를 밝힌 바 있다. 스탤론은 콘텐더의 대성공 후 50을 넘긴 나이에 영화 <록키 발보아>에 주연으로 출연, 감동의 복싱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프로그램에서 유망선수들의 트레이닝을 맡은 이는 ‘전설적인 복싱영웅’ 슈거 레이 레너드였다. ‘복싱천재’ 레너드의 조련으로 무명선수들은 단지 휴먼스토리를 앞세워 인기만 높았던 것이 아니라 세계 정상을 넘볼 정도의 실력도 갖추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이다. 한때 미국에 이어 세계 2대 시장을 자랑했던 한국 프로복싱은 현재 양대기구(WBA WBC) 세계챔피언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몰락했다(여자 제외). 이른바 노챔프국. 더욱이 마지막 챔피언이었던 지인진이 현역 챔피언 벨트를 내던지고 K-1으로 ‘전향’해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여기에 ‘복싱 중흥’을 부르짖던 전 챔프 최요삼은 10개월 전 ‘화끈한 경기’를 펼치려다 그만 링 위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한때 제2의 박종팔, 장정구, 유명우를 꿈꾸는 청소년들로 넘쳐났지만 이제는 몇몇 체급에서 10위까지의 한국랭킹을 발표하기도 힘들 정도로 선수층이 얇아졌다.
최요삼의 죽음 이후 확실하게 복싱을 살릴 ‘한방’이 필요하다고 고민하던 KBC가 최종 선택한 것이 바로 콘텐더의 한국판이다. WBC는 11월 1일부터 8일간 중국 청두에서 연례총회를 열고 있다. 김철기 회장 등 KBC 임원과 오수종 KBS N스포츠 사장이 이 자리에 참석해 호세 슐레이만 WBC 회장(멕시코)과 ‘코리안 콘텐더’ 협약식을 갖는다. 단순히 국내 프로복싱 및 방송사의 이벤트가 아니라 WBC까지 보증하는 대형이벤트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대회방식은 페더, 라이트, 웰터, 미들 등 4체급에서 1, 2차 각 16명씩을 선발한다. 미국은 미들급~슈퍼미들급을 기준으로 했지만 한국은 선수들의 평균골격이 작은 까닭에 하향조정했다. 1차대회 우승자는 동체급 한국챔피언과 타이틀전을 치르고, 이어 2차대회 우승자와 최종 왕중왕전을 펼치는 것이다. 체급별 왕중왕전 우승자는 세계타이틀 도전이 가능한 세계랭킹에 진입하며, 4명 중 MVP격인 한 명에게는 바로 WBC타이틀전 우선 도전 기회를 준다. 왕중왕전은 내년 11월 제주에서 열리는 WBC총회 때 특별이벤트로 열린다. 스타트인 1차대회는 오는 11월 14일 시작돼 내년 3월까지 치러지고, 2차대회는 2009년 4~8월 사이에 열린다. 물론 전 경기가 KBS N스포츠를 통해 생중계되며, 경기뿐 아니라 출전선수들의 애환을 담은 ‘리얼 다큐’도 특별프로그램으로 방송된다. 선수들에게는 경기마다 개런티가 주어지고, 화끈한 경기를 유도하기 위한 KO수당도 마련했다. 2억 원이 넘는 총상금으로 복싱 전성기에 큰 인기를 누렸던 신인왕전의 3~4배 규모다.
황현철 KBC 홍보부장은 “최요삼 선수의 링사고 직후 KBC가 정말이지 많은 공을 들여 준비한 이벤트다. 만 1년 동안 꾸준히 지속되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복싱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설명했다.
코리안 콘텐더는 풍운아로 유명한 전 WBC밴텀급챔피언 변정일이 주최를 맡았다. 변정일이 대표로 있는 JIB프로모션이 일체의 행사를 책임진다. 원조 콘텐더에서 스탤론과 레너드가 맡았던 역할을 한 번에 수행하는 것이다. KBS 복싱해설위원이기도 한 변정일 프로모터는 “가능한한 많은 엔터테인먼트 효과도 가미하겠다. 필요하다면 연예인들이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것도 유도하겠다. 오로지 복싱 발전의 불씨를 피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