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 복도.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방 배치는 국회사무처가 각 당의 구역을 배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 다음은 당의 방침에 따라 진행된다. 새누리당은 당선인들이 원하는 방의 호수를 2지망까지 정해 원내 행정국에 알리면 선수와 나이에 따라 방을 배정한다. 재선에 성공한 의원은 본인이 원하는 경우 기존의 방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호수가 아니라 구역만을 지망할 수 있다. 그 이후부터는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선수와 나이에 따라 정해진다.
지하 5층, 지상 10층의 의원회관에서 6~8층은 ‘로열층’으로 통한다. 조망권과 접근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한강이 보이는 북서쪽과 분수와 잔디가 보이는 북쪽에 위치한 방은 의원회관 최고의 ‘명당’이다. 이곳은 대부분 각 당 중진의원들 몫이다. 한 여당 의원실 비서관은 “6층에는 찻집, 테라스 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6~8층은 이곳을 부담 없이 계단으로 드나들 수 있어 더욱 선호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일요신문>이 직접 로열층을 다녀본 결과 흥미로운 점이 포착됐다. 새누리당 친박과 비박계 의원들이 따로 모여 있었던 것이다. 당 계파 갈등이 방 배정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단 6층에는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이 601호에 둥지를 틀었다. 그 옆을 박덕흠(604호) 원유철(648호) 의원이 배치받았다. 이른바 ‘친박 라인’이다. 7층엔 단연 ‘무대 라인’이 시선을 모은다. 김무성 전 대표(706호)를 중심으로 이군현(704호) 강석호(707호) 의원이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이 의원과 강 의원은 대표적인 무대계다.
강석호 의원실 비서관은 “일단 안으로 들어와서 보면 이해할 것”이라며 방으로 안내했다. 한강과 다리가 보이는 창문을 가리키며 그는 “707호는 행운의 숫자가 2번이나 들어간 데다 전망이 좋고 화장실, 휴게실 등 편의시설이 가까워 14명의 의원들이 지망한 인기 의원실”이라면서 “의원님이 김 전 대표 측근은 맞지만 방 배정과는 전혀 무관한데 언론에서 계속 엮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이군현 의원실 측도 “중진의원들 방 근처가 인기 있는 건 사실이지만 704호는 김 전 대표가 19대 중반에 옆방으로 오기 전부터 우리가 처음으로 입주한 방”이라면서 “(김 전 대표) 측근은 분명하지만 방 배정에 있어 ‘같이 갑시다 식’의 인위적인 시도는 정말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더민주 지도부는 로열층이 아닌 4층에 몰려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404호), 우상호 원내대표(413호), 최운열 정책위원회 부의장(445호)은 모두 4층을 배정받았다. 국회의장 후보군으로 오르내리는 문희상 의원도 4층(454호)다. 문 의원실 보좌관은 “4층이라 계단을 이용해 오르내릴 수 있고 손님들도 찾기 편해 17대 때부터 쭉 같은 방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물급 의원 옆방도 ‘로열층’ 못지않은 명당이다. 18대 국회시절 유일호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친박계는 아니었지만 옆방이었던 박근혜 당시 의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유 부총리가 현 정부 들어 요직에 기용될 수 있었던 배경에 당시의 ‘인연’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더민주의 한 중진 의원은 “솔직히 초선 의원이 무슨 힘이 있느냐. 4년 의정생활 동안 대선주자급 의원들과 독대 한 번 못하고 끝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거물들 옆방에 있으면 그들과 오다가다 인사도 자주하고 친해질 기회를 얻게 된다. 이는 초선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배출한 방도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19대 때에 이어 20대에도 박 대통령이 사용하던 545호를 잡았다. 안민석 더민주 의원도 한때 박 대통령이 사용했던 620호에 배정됐다. 안 의원실 측은 “원래 쓰던 방이 주차장이 보이는 곳이어서 한강이 보이는 구역으로 옮기길 원했을 뿐 박 대통령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숫자’에 의미를 두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19대 때 442호를 사용했던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4·13 총선 승리를 기념해 413호로 방을 옮겼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518호)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615호)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해 방을 얻었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가 19대 때 사용했던 325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인 5월 23일을 뒤집은 번호로 20대엔 문 전 대표 정무특보 출신 권칠승 당선인이 물려받았다.
이처럼 의원들이 선호하는 방이 있는가하면 기피하는 곳도 있다. 444호는 불길하다는 이유로 모든 의원들이 기피해왔다. 결국 재작년 리모델링 때 아예 사라졌다. 또 유독 낙선한 의원들이 많은 구역에 위치한 방도 의원들이 꺼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9층 남동쪽 구역은 19대 의원들 대부분이 공천을 못 받거나 낙선 등의 이유로 교체되었다”면서 “이번에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이 934호에서 550호로 이사한 이유도 나쁜 기운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박혜리 인턴기자 ssssch333@ilyo.co.kr